|
연극배우 김동원의 삶과 예술 |
"연극은 예술도 직업도 아닌 삶 자체"
13일 별세한 연극배우 김동원 선생은 1916년 개성에서 큰 양화점을 운영했던 부모 사이에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32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연극부를 조직한 고인은 소공동 공회당에서 유치진 연출의 '고래'와 '가보세'로 연극부 창립공연을 가졌으며 다음해 학교 강당 신축 기념공연 '성자의 샘'에 출연했다.
극예술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1934년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했으며 이듬해 '소'로 창립공연을 가졌다.
이후 연극 작품에 계속 출연해오다 1948년 '밤의 태양'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으며 1950년에는 이해랑, 이화삼, 김선영, 황정순 등과 함께 극단 신협(국립극단 전신) 멤버로 활동을 시작, 국립극장 개관기념 공연 '원술랑' 무대에 섰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납북됐지만 평남 순천에서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해 대구에서 국내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햄릿'(극단 신협) 공연에 출연했으며 이후 1957년 극단 신협의 무대,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작,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기념작 등 모두 네 번에 걸쳐 '햄릿'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1954년에는 연극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극단 신협의 '인수지간'을 자신의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이후 영화 '자유부인'과 '마의 태자'(1956), '종말 없는 비극'(1958), '춘향전'(1961), '청춘교실'(1963),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등 1970년대까지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자신의 연극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세일즈맨의 죽음'(1957), '뇌우'(1988)에 출연했으며 1964년 TBC 수사극 '바이엘극장'에도 나왔다. 1975년에는 국립극단장을 맡기도 했다.
1992년 아들들이 고인이 갖고 있던 사진자료와 대본 등을 정리하고 구술을 받아 회수 기념 자서전 '예에 살다'를 냈으며 2003년에는 미수 기념 자서전 '미수의 커튼콜'을 펴냈다.
연극평론가 유민영은 이 책에서 "김 선생은 첫 출연작인 1932년작 '고래'에 선장의 아내 역으로 나왔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이어서 여자 역으로 안성맞춤이었다"고 적었다.
영화 속 캐릭터로는 교수나 교장, 의사, 성격 좋은 아버지로 나왔으며 연극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는 그 이상의 적임자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책에서 "배우란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에 원래의 자신을 철저히 잊고 맡은 역할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체험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배우관을 밝혔다.
그는 배우가 되면 스스로 사생활에서 누구보다 모범적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언행이나 가정생활에서 남들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또한 "평생 무대에서 연극배우로 살아왔기에 내 삶을 산 것보다 작품 속 삶을 더 많이 살았던 것 같다"며 "연극은 나에겐 예술도 직업도 일도 아닌 삶 그 자체였던 것 같다"고 책에 적었다.
고인은 화초를 바라보면 "근심이 사라지고 삶의 의욕을 느낀다"며 화초 가꾸기를 취미로 삼았다.
자서전 '미수의 커튼콜'에 기록된 출연작만 연극과 영화를 포함 350여 편에 이른다.
김정선 기자 jsk@yna.co.kr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