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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허물기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대구 삼덕동 주택가에서 지난 5~7일 열린 인형마임 축제 현장. 동네 중심부 빗살 미술관 앞 네거리에서 행위예술 그룹 ‘몸꼴’이 리어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댄 이번 축제에는 주민과 외지인 등 3000명 이상의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서태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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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도시
지자체 변신-주민욕구 맞물려 전통으로 건축으로 예술로도시가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눈높이 다르고 부작용도<ㅠㄱ>‘문화도시 꿈’ 가깝고도 멀다 바야흐로 문화 누리가 열린 것인가? 동사무소 건물에서 연극판이 펼쳐지고 주택가 담을 허문 자투리 마당을 마임극 배우가 누빈다. 동네 장터가 즉석 화랑으로 탈바꿈하고, 도시의 다리와 옛 건축물들은 밤마다 오색빛 조명등을 단 매체예술품으로 거듭난다. 세금 거두기, 건설사업, 재개발 등이 주특기였던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제는 자기네 문화를 나눠주고 알리는 전령사로 나섰다. 특산품 지역 축제와 문예회관 따위는 벌써 한물간 유행이고, 최근엔 지자체의 문화시설에서 자생적 주민 공동체도 싹트는 조짐이다. 문화도시를 내세우는 쪽으로 지자체가 변신한 데는 무슨 곡절이 있을까? 그 겉과 속은 어떤 것일까?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도시 공간에서 문화는 분명 돈이 되고 표가 되는 화두로 떠올랐다. 획일적인 육면체 건물과 탁상 도시계획, 난립한 간판들 틈새로 여러 얼개의 문화공간과 문화공동체들이 치고 들어왔다. 문화 경영자·지킴이를 자임하는 지자체가 그 변신을 이끌고 삶을 누릴 공간을 찾는 주민들의 새 욕구가 장소 만들기 콘셉트에 어우러지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하다. 1999년부터 전통문화 체험촌으로 면모를 뒤바꾼 전주 풍남동 일대 한옥마을에서는 요사이 망치소리가 드높다. 한옥을 수리해 민박촌으로 개조하는 공사다. 몰려드는 외지인들의 문화 체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5일엔 〈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 문학관도 문을 열었다. 민간 전문가 중심의 전통문화도시 추진기획단과 시의 노력으로 한지, 부채, 옻칠장 등의 전통 예인들이 모이고, 술 박물관, 한지 공장, 공예공방촌 지담, 전주 한지원, 강령탈춤 전수관 등도 들어서 한옥마을은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전통문화 중심도시로 선정되어 올해만 100억원 가량의 예산 지원도 받는다. 문화기반 취약한 안양시는 훨씬 ‘과격하게’ 나갔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안양유원지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첨단 현대미술 트렌드로 놀자판 유원지의 탈바꿈을 꾀했다. 건축 거장 알바르 시저, 비토 아콘치를 비롯한 세계 25개국 저명작가 90여명의 첨단 설치작품과 건축물들을 곳곳에 설치하는 예술 공원 전략이다. ‘난해하다’ ‘주변 식당, 모텔촌과 조화가 안 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기존 유원지의 흐트러진 분위기는 분명히 바뀌었다. 개고기 식당, 불륜촌 오명을 썼던 계곡에는 레스토랑과 의류점 등의 고급 시설이 조금씩 늘어나고 외지 관객 발길도 늘었다. 서울의 경우 2002 월드컵 뒤 남산타워, 한강다리, 선유도 공원, 숭례문 등 60여개 시설물에 다양한 색깔의 야간 조명을 달아 새로운 밤 문화 명소를 만들기도 했다. 전통, 공간적 정체성을 반영한 문화 명소 마케팅은 요즘 지자체의 지상목표다. 하지만 문화로 먹고 살고 즐기는 ‘문화 도시’로 가는 길은 여전히 걸음마다. 문화를 수단으로만 보는 관청과 활동가, 시민 사이의 인식 격차, 반사이익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한 멍에들이다. 인천 남구 의회는 구청이 세우려던 미디어센터 건립안을 올해 초 “복지시설 투자가 더 중요하다”며 정부와 시에서 따온 예산까지 부결시켰다. 전주 한옥마을도 땅값이 뛰면서 상인, 시민단체, 관 사이에 이해 대립이 표면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70년대 녹지 마을인 진관외동 한양주택에 아름다운 마을 상까지 주었지만 뉴타운을 짓는다며 철거계획을 발표했다. 문화도시의 꿈 앞에서 이렇듯 현실은 가까운 듯 멀다. 인천 대구 전주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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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이 주최한 학산 젊은 연극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흥겨운 거리 난장을 펼치고 있다. 연극배우 출신 구청장이 설립한 학산문화원과 소극장은 80년대 소극장 메카였던 인천 연극계의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학산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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