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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5 22:14 수정 : 2006.05.15 22:14

이제는 문화도시
나아갈 길 그리고 외국 사례

지자체, 멍석만 깔면 뭐해? 주민을 불러모아야지!

‘문화도시’ 슬로건은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본격화한 이른바 ‘장소 마케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소 마케팅은 지역 특유의 문화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역 명소를 부각시켜 관광객, 투자를 유치하는 브랜드 중심의 기업형 도시 전략이다. 급속한 도시화 속에 공간의 질을 묵살했던 과거에 대한 성찰, 세계화와 지방자치 이후 불붙은 도시 사이 투자 경쟁도 주된 요인이 됐다.

국내 장소 마케팅은 70년대 큰 성과를 거둔 일본의 ‘마치즈쿠리’ 운동(쾌적하고 개성있는 도시·마을 만들기 운동),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 스페인 빌바오, 브라질 환경도시 쿠리치바의 성과 등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 지자체의 장소 마케팅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 난립한 관 주도 특산물 축제 바람으로 나타났다. 축제 망국론까지 나올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했지만, 국내 처음 문화조례를 채택한 순천, 부천 영화제, 전주 한옥마을, 대구 담 허물기 운동 등의 모범사례들이 알려지고 서울 대학로, 홍대 앞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문화도시의 쟁점과 대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역분권을 표방한 참여정부는 2004~2005년 ‘문화중심도시’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를 국가 정책 의제로 공표하고 부산, 광주, 전주, 경주를 문화 거점 도시로 지정하면서 문화도시는 더욱 핵심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선거용·관광상품 포장 구청장 입김에 휘청휘청
자생문화 씨앗 못틔워 공급자 논리 벗어나
시민참여 프로그램 채워야

전문가들은 국내 문화도시론은 포장만 화려할 뿐 개념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실하고, 일방적인 공급자 논리를 벗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일단 기념비적 시설을 지어놓고 문화역량을 지닌 인적 자원 개발 등의 전제 조건은 건너뛴 뒤 그 다음 단계의 마케팅부터 추구한다는 것이 보통이라는 말이다. 이 점은 주축 산업 퇴락에 따른 경제적 필요성에서 문화도시 전략을 채택한 서구와 달리 국내 지자체에서 정치논리와 단기 관광수익 증대 등을 노린 개발 프로젝트가 많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된 광주시의 복합문화산업단지 계획, 서울 청계천 복원을 본뜬 일부 지방 도시들의 실개천 프로젝트는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2004년부터 정부가 문화 거점 도시 지원계획을 수립해 막대한 국비를 지원하면서 되레 자생적 문화도시 운동의 길을 좁히고 외부 돈줄에 기대는 풍토만 부추겼다는 냉소도 없지 않다.

2005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경주 역사도시안의 경우 30년간 3조2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고분공원 개발, 황룡사 복원, 신라의 길 등의 관광인프라를 복원한다는 내용이나 정작 주민 공동체의 자생적 문화 인프라는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경대 경주대 교수는 “고도에 예술가들이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휴먼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기본 문화시설도 없고, 한옥을 수리할 전문가조차 없는 게 경주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도 올해 예산 2800여억원 가운데 문화전당 건립 총비용이 1920억원인 데 비해 콘텐츠와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도시기반 조성사업비는 125억원에 불과하다. 광주 북구 문화의 집 관장 전고필씨는 “시민 문화 의식을 높이기 위한 자발적 네트워크와 인적 자원 개발 등의 노력이 없는 한 선거 때마다 바뀔 지자체장의 성향에 문화도시의 장래를 의존하는 양상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구 삼덕동 주민들과 대구시가 99년 연합모임을 만들어 관공서, 다른 지역 주택으로 담허물기 운동을 확산시킨 것은 참고할 만한 본보기다. 주민, 문화활동가, 관의 긴밀한 소통 아래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면 문화도시는 정체성 혼돈만 일으키는 신기루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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