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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9 15:09 수정 : 2006.05.19 15:09

야사카 타카노리와 토다 유키히로의 만화 <키마이라> 전 6권 ⓒ 대원씨아이

만화를 보다 심심치않게 발견되는 소재가 바로 정치다. 만화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거나 감춰진 이면을 살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가장 흥미롭게 다가설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히로카네 칸시의 <정치9단>과 안도 유마의 <쿠니미츠의 정치>가 대표적인 정치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만화들은 노련한 정치인의 시각으로는 풋내기로 보일만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식적인 정치'를 이야기함으로써 상식이 사라진 일본의 정치에 경종을 울린 만화들이다.

일본의 정치와 비슷한 면이 많은 우리나라의 정치와도 통하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자들도 이 만화들에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 만화들과는 달리 야사카 타카노리와 토다 유키히로의 만화 <키마이라(Chimara)>는 대단히 파격적인 소재 활용을 통해 그들 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이야기한다. 20세기의 세계사를 이야기하자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돌프 히틀러의 이미지를 빌어 완성된 만화인 것이다.


21세기판 아돌프 히틀러를 탄생시키려 하는 세 남자

"누구나 은밀하게는 절대적인 존재에 이끌리기를 바란다. '신(神)'은 곧 민중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에 형태를 부여했을 때 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만화 <키마이라>는 아돌프 히틀러가 생전에 했던 발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선동의 천재였다. 미대 시험에 2번이나 떨어지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던 청년이 독일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업어 총통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그 이면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대중선동과 심리조작, 이미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

저 발언으로 보았을 때 히틀러는 어려운 현실에 처한 대중들은 영웅이 탄생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 된다. 대중의 그런 바람에 부합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추면서 자신은 '신'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웅변술은 이런 재탄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신'은 민중의 지도자이기 전에 완벽한 배우여야 한다"던 그의 발언이 그의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대변한다.

<키마이라>에 등장하는 재벌 2세 류이치와 방송국 PD 코바야시, 폭력조직의 2인자 카오루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본의 현실에 절망과 환멸을 품은 나머지 과거의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절대적인 '신'을 탄생시켜 일본을 개혁할 것을 다짐한다. 정치권력을 뒷받침하는 재력과 미디어, 그리고 폭력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신'으로 재탄생시킬 남자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노숙자 시로를 선택해 호시노 쿠니요시라는 사람의 버려진 호적을 바꿔치기하며 인위적으로 기억을 주입해 대중선동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그러면서 그를 중의원 선거에 출마시킬 계획을 꾸미게 된다. 호시노 쿠니요시에게 주입시킨 '신의 탄생을 위한 기술'은 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비밀 문서였다.

만화 <키마이라>는 그렇듯 다시 태어난 호시노 쿠니요시를 통해 시대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하며 국민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일본의 정치에 대한 적나라한 공격을 시작한다. 고이즈미 정권이 시도중인 개혁은 물론이고, 정계의 흑막까지 대놓고 파헤치는 놀라운 뚝심이 특히 돋보인다.

만화 속에서 일본의 총리로 등장하는 아사누마 준이치로는 그 이름도 이름이지만, 외모부터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대단히 비슷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그 뚝심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만화 속에서 정계의 막후인물로 등장하는 니카이도 쇼고와 아사누마 준이치로와의 관계에 대한 대담무쌍한 묘사는 실존 인물인 일본 정계의 거물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독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키마이라>의 이야기는 세 남자가 탄생시킨 호시노 쿠니요시와 니카이도 쇼고의 아들 니카이도 나오키의 중의원 선거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이야기에는 호시노 쿠니요시의 화려하고도 파격적인 언행을 바탕으로 일본 정계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이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의 선거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게 묘사돼 있다. 겉은 달콤하지만 속은 비었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도넛"이라고 주장하는 세 남자의 확고한 주관도 독자들에게는 이색적으로 보일 것이다.

지나치게 빠른 완결의 아쉬움

이 만화의 이야기를 맡은 토다 유키히로는 <키마이라>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1권에 언급된 작가의 말에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느긋하게 봐달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이야기의 규모도 장기 연재가 아니라면 묘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키마이라>는 6권을 끝으로 완결을 서둘렀다. 1권에서 소개한 작가의 말과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다.

<키마이라>를 주목했던 일부 마니아들은 정계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외부의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하고 있을 정도. 물론 평범한 우리로서는 사실상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렇듯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그런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6권은 지나치게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 서두른 기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적절한 결말을 활용하며 어색하지 않게 마무리지은 것 역시 토다 유키히로의 역량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만화 <키마이라>는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박진감과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호시노 쿠니요시의 열변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결말 역시 급조됐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독자에게 또다른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탄생, 요즘 서구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네오 나치의 유행은 대중의 어려운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어려운 현실은 궁극적으로는 무능한 정치가 그 원인이다. 결국 전세계의 악몽이었고 지금도 그 불씨가 남아있는 나치즘은 무능한 정치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호시노 쿠니요시의 화려한 언변을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키마이라>의 강렬한 마무리는 결국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신'이 아닌, '상식'이 필요하다. 정치에 '상식'이 자리잡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신의 소중한 한 표일지도 모르겠다. <키마이라>는 '소중한 한표'와 '상식'을 강조하기 위해 그려진 만화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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