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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2 15:13 수정 : 2006.05.22 15:13

쿠라시나 료와 나카타니 디의 만화 , 현재 6권까지 출간 ⓒ 대원씨아이

시장가격이 내재가치에 비해 과대포장된 것을 의미하는 '거품 경제'의 대표적인 표본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과 함께 199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가와 부동산 시세가 폭등하다가 한순간에 하락하면서 장기적인 침체를 겪게 됐다. '거품 경제'의 몰락은 중산층의 가계 경제를 피폐시키고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경제 관련 만화는 <시마 과장> 시리즈와 같은 기업 만화나, <은과 금>과 같이 '어둠의 경제'를 다룬 만화들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쿠마시나 료와 나카타니 디의 만화 < DAWN-태양은 다시 뜬다 >(이하 <태양은 다시 뜬다>)처럼 본격적으로 경제의 모든 것을 다룬 만화는 보기 어려웠다.

이 만화는 미국 증권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룬 천재가 일본의 궁극적인 경제 개혁을 꿈꾼다는 식의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깔린 경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대단히 전문적이다. 마침 우리나라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카드 남발로 인한 부작용 탓에 심각한 내수 경제 부진을 겪고 있기에 이 만화가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 있을 듯하다.

이 만화에서 '의외로' 엿보이는 한국 대중소설의 흔적


이 만화의 주인공인 '야하기 타츠히코'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국 증권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펀드매니저. 하지만 그는 어찌된 일인지 소리소문없이 일본에 귀국해서는 신주쿠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노숙자들이 대부분 건실한 삶을 살다가 거품 경제의 후유증으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해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야하기 타츠히코'는 이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반성한다. 미국 증시의 번영과 그로 인해 이룰 수 있었던 자신의 성공은 근본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권시장을 유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야하기 타츠히코'에게는 마침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횡포에 불만과 회의를 품고 있던 친구인 은행원 '호사카'가 있었다. 일본 경제에 대한 인식이 비슷했던 두 친구는 결국 "은행을 인수해 은행장 자리에 앉히겠다"는 거래가 오간 끝에 손을 잡기로 결심한다. 노숙자 주체의 벤처 기업을 세우고, 헤지펀드를 설립해 미국 증시를 역공하겠다는 '야하기 타츠히코'의 전략에 '호사카'도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에는 '의외로' 한국 대중소설의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돈의 마력에 취해 몰락한 중산층을 밟고 엄청난 재산을 가지게 된 주인공이 '반성'의 과정을 거쳐 변신한다는 설정은, 악랄한 사채업자의 아들이 '변신'해 무담보 대출을 운영방침으로 삼는 파격적인 신용금고를 세운다는 내용을 드러낸 작가 이원호의 소설 <불야성>을 연상시킨다. 그와 더불어 아시아의 주식시장을 유린하는 미국 증시의 이면은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를 닮았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의 불황에는 미국 증시와 부유층의 횡포가 있었다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 드러난 결과로 보인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는 건드리기 어렵지만, 그 이면을 꼬집으면서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으로, 이단아의 길을 걷는 한 사람의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에서도 '야하기 타츠히코'라는 이단아를 등장시켜 미국의 일본 '신세기은행'에 대한 TOB(Take Over Bid:공개 매수)' 음모와 악랄한 M&A(Mergers And Acquisitions:기업 인수 합병) 전략에 맞서 싸우는 등, 본격적인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밟고 배를 불리는 슬픈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한동안 공산주의라는 저항을 유발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밟고, 더 많은 부를 누리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운다"는 통설과도 비슷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의 증권 시장은 미국 증시의 손쉬운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고, 가진 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적인 현실에서 중산층을 비롯한 서민은 손을 쓸 틈도 없이 소박한 '1개'를 잃게 된 것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에서는 그렇듯 우리 주변의 소박하면서도 절박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관심을 유도한다. 경제적인 현실이 비슷한 덕분에, 그 이야기들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는 만화라는 장르라서 그런지 다소 비현실적인 장면도 있지만, 이 작품의 기본적인 목적이 경제 현실에 대한 대중의 각성과 카타르시스 제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흠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시마 과장> 시리즈가 더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시마 과장> 시리즈는 대기업의 임원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돼 보수적인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흠이 있다.

이 만화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미국 증시와 소수의 가진 자들의 음모와 야합을 막아 '다시 떠오르는 일본'을 만들겠다는 주인공의 야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 만화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인간다움'을 상실해가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면이다. 한 인간의 땀과 눈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야박함이 미국 증시 현장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며, 다시 나타난 '야하기 타츠히코'의 옛 연인은 그를 통해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는 데에만 집착한다.

증권과 기업에 대한 테크닉이 현란하게 전개되는 <태양은 다시 뜬다>지만, 그렇듯 인간다움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다수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면서 그 결론만큼은 대단히 상식적이라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요소 중 한 가지.

이 만화는 그렇듯 반역을 통해 '인간다움'과 '부활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영웅의 이야기다.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이 만화는 이 영웅의 결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 전체가 좌우될 듯하다. 물론 지금까지 선보인 꽉 짜인 내용과 전문성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만화'가 될 가능성을 갖추었지만 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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