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5 21:26
수정 : 2006.05.25 21:26
32년 방송기자 끝내고 시인으로 돌아온 유자효씨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와 시인의 다른 점은?
SBS 라디오본부장을 끝으로 32년간 방송인 생활을 일시 중단한 시인 유자효(59)씨 답은 이렇다. “기자는 사실적인 글을, 시인은 정서적인 글을 쓴다.” 또 있다. “기자는 지상의 가치를, 시인은 천상의 이상을 추구한다.”
1974년 KBS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 추구하는 가치와 방식이 다른 두 일을 병행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릴케도 잡지사 기자 하면서 시를 제대로 쓰지 못해 가정과 직업을 떨쳐버리고 프랑스로 건너가 로댕 비서가 됐다고 합니다.”
유씨는 기자로 시를 써온 시간에 대해 “카뮈가 <이방인>에서 말했듯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찢어진’ 존재로, 그 괴리 때문에 아픔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사실관계 확인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기자 직업이 그의 시쓰기에 보탬된 것 또한 숨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방송일을 중단하니 시작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유씨가 최근 <성자가 된 개>(시학)를 냈다. 아홉번째 시집이다. 제목은 어느 시낭송회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보고 쓴 시 ‘개’에서 따왔다. 시집에는 자유시 47편과 시조 23편이 실렸다.
그는 나이 들면서 불교적 세계관에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고 한다. 거기에다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겹쳐진다. “2005년 6월19일/전방에서는 총기난사 사고로 군인 여덟명이 비명에 갔다/그 엿새 뒤/장례식이 끝나고/영정과 관이 군인들의 손에 들려 나오자/어머니는 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아가, 엄마랑 집에 가자”/20여년의 꿈이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집’전문)
유씨는 시 ‘이상한 스타’에서 늦깎이 가수 장사익을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눈물이 난다고 한다/한이 연륜에 삭아있다고 한다/그는 소리없이 엄청난 팬군단을 거느리고 있다/10년이 하루/장사익”
고교시절 ‘소년 문사’로 날린 유씨는 1967년 신아일보 지상백일장에 시조가 입상하고 이듬해 같은 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했다. 1972년 <시조문학>을 통해 정식 등단한 그는 “김춘수 시인이 생전 ‘우리나라에 좋은 시인은 많지만 큰 시인이 없다’고 했다”며 “이제 시작(詩作)에만 매달릴 수 있으니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역사성을 지난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평소 시조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그는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는 우리 시의 원형”이라며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다면 시조시인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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