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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8 19:25 수정 : 2006.06.09 14:59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이웃집 어른과 또래가 사라진 동네
세상과 교섭하는 배움의 길이 막혔다
공부방·지역아동센터가 ‘동네’로 자리매김
니홀로 아이들아, 동네로 나오렴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상담원 : 네, 고객님! / 고객 : 안녕하세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아주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아이였다.) / 상담원 : 네, 말씀하세요. / 고객 : 있잖아요, 숙제를 하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78 - ( ) = 52는 뭐예요? / 상담원 :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78 - ( ) = 52 말씀이십니까? / 고객 : 네. / 상담원 : 집에 숙제 도와줄 사람 없어요? / 고객 : 네, 아무도 없어요. (…)’ (한국인포에이타 <114 KOID 사람들 이야기> 중에서)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114 안내원들은 종종 엉뚱한 문의에 당황한다. 그리고 이따금 어린 아이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가슴 찡한 내용들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하늘나라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아이, 밤늦도록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무섭다면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 책을 읽다가 모르는 말이 나와서 물어보는 아이 등 각양각색의 ‘사연’들이 위 책에 실려 있다. 그런 전화들의 공통점은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걸어온다는 점이다.

맞벌이 부부와 해체가정이 늘어나면서 ‘나 홀로 집에’ 머무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집 밖에 나가면 이웃집 어른이 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동네’가 사라진 지금 유치원이나 학교 또는 학원에 가지 않으면 모두 외톨이 신세다. 빈민지역에서 그렇게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1970년대 말부터 탁아운동이 일어났고, 그와 함께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부방’이라는 것도 출현했다. 도시와 농촌 곳곳에서 거의 자원봉사나 마찬가지로 헌신해온 교사들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성장기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한 교육 복지가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하고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는 단순히 방과 후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학교 숙제를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공교육이 담아내지 못하는 다양한 학습의 장이 거기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방’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실행된다. 예능 실력을 다듬어 동네 축제에 참여하여 발표하기, 독거노인들의 다리 주물러 드리는 자원봉사, 마을의 자연 환경 관찰 등이 그것이다. 부모들이 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핵심적인 일과로 정착된 ‘나들이’나, 도시형 대안학교들에서 활발하게 시행하는 ‘인턴십’도 그런 맥락에서 자리 매김할 수 있다.

학교 공부는 책으로 정리된 지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인간은 직접 상황에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특히 아이들은 왕성한 호기심과 유연한 두뇌 덕분에 세상과 교섭하면서 스스로 지적 능력을 키워가는 데 탁월하다. 그것을 입증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브라질의 대도시에는 길거리에서 관광객이나 행인들에게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린아이들 (이른바 ‘street children’)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산수 문제는 잘 풀지 못하면서 거스름돈을 계산하는데 필요한 산수 지식은 매우 정확하게 체득하고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은 그들의 독특한 연산 방식을 ‘길거리 산수’(street mathematics)라는 이름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인도의 기술회사 NIIT에 근무하는 어느 연구원은 인터넷에 연결된 PC를 그의 회사 담벼락에 설치하고,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사람들의 반응을 모니터했다. 그 바깥쪽은 빈민가였는데, 거기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 교육도 받지 않고 영어도 알지 못하면서도 몇 주일 내에 컴퓨터 사용법을 스스로 터득해냈다. 이 실험으로 사회 혁신상을 받은 그 연구원에 따르면 10만개의 부스를 설치할 수 있다면 5억명의 인도 이린이들이 컴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기초로 ‘최소간섭 교육’ (Minimally Invasive Education)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아이들이 자발적이고 신나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은 매우 풍부하게 고안될 수 있을 것이다.


‘맹모삼천’에 대해 유머를 곁들인 풀이가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시행착오로 거처를 옮겨 다닌 것이 아니었다는 해석이다. 우선 묘지 근처에 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도록 하고, 그 다음으로 장터 근처에 살면서 생존의 치열함을 알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에 접하면서 획득하는 사고력과 감수성이 인간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바탕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학교의 안과 바깥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가운데 실행되어온 근대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금, 경험을 통한 배움으로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열려야 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 점점 확대되는 가운데, 지역사회와 도시 공간에서 다양한 학습 자원을 발굴하여 연계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거기에서 새로운 학습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 창조해갈 어른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및 친지 그리고 교사 이외에는 알고 지내는 어른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동네의 아줌마 아저씨들을 자연스럽게 사귀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생각과 생활이 한결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원래 동네는 아이들이 또래끼리만이 아니라 어른들과도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매개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가장 원초적인 ‘사회’를 경험할 수 있다. 어른들도 혈연을 넘어 동네의 아이들과 학연(배움의 인연) 그리고 지연(地緣)을 맺을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알음알이의 네트워크는 불안정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든든한 관심의 그물망이 된다. 학습의 즐거움을 깨닫고 나누려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마을은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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