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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주빈국 행사 기획진 사퇴 파문
정부가 돈을 대는 대형 미술행사 때마다 민간 기획자나 작가들이 공무원들과 충돌해온 것은 우리 미술판의 달갑지 않은 고질이다. 최근 이 고질이 내년 2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국제적 미술품 판매 전람회인 ‘2007 아르코(ARCO)아트페어’의 주빈국 행사 준비과정에서 도졌다. 국내 화랑들의 참여 외에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과 공연, 영화 등을 소개하는 주빈국 문화 행사를 위해 문화관광부가 비용 20억원을 대면서 기획자들에게 ‘건의’와 ‘의견’을 준 것이 말썽을 빚었다. 주빈국 행사 기획을 총지휘해온 김선정(41·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커미셔너 등 국내외 기획진 12명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부 관료들의 간섭이 지나치다고 비난하며 총사퇴를 선언했다. 불과 10여일 전인 지난달 26일 밝은 표정으로, 방한한 루데스 아르코 위원장과 함께 장밋빛 구상을 털어놓던 모습에서 돌변한 것이다. 사퇴 이유는 구조적인 커미셔너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과 상식을 뛰어넘는 관료들의 간섭, 두 가지다. 김씨는 “커미셔너로 결정된 뒤 공식 계약 없이 일을 진행했지만 업무 인력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예산, 행정 지원 외의 행사 내용까지 문화부 쪽에서 변형, 삭제, 추가를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문화부가 현대 미술과는 관계 없는 ‘코리아판타지’ 부채춤 공연을 주문하고, 주빈국 문화예술을 알리는 학술포럼 개최 취소를 압박하는 등 노골적인 간섭을 했다는 것이다. 반면 문화부는 해명자료에서 “김씨의 회견은 커미셔너직을 수행하면서 국고를 유용하고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회피”라며 “국가 사업인 아르코 행사를 개인사업 정도로 인식해 추진한 결과”라고 신랄한 반박을 쏟아냈다. 문화부 쪽은 또 “주 스페인 한국대사관 등에서 전통문화 소개의 필요성에 따라 코리아 판타지 공연을 포함시켜달라는 의견을 받아 추진한 것뿐”이라며 “(김씨의 행태는) 외부 힘을 빌려 주빈국 행사를 취소하도록 간접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커미셔너 김선정씨 “문화부 지나친 간섭” 맹비난문화관광부 “국고 유용·불성실 회피” 반박 외국 미술계가 초청한 행사를 맡은 국내 기획자가 총사퇴 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로 국제적 파문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기획했던 김씨가 높은 국제 지명도와 해외 채널을 발판으로 한국 현대미술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파워기획자’인데다, 백남준 전을 기획한 데이비드 로스 전 휘트니 미술관장, 젊은 작가전 기획자 찰스 에셔 등도 국제 미술계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지닌 이들이기 때문이다. 배병우, 김수자씨 등 중견작가 전시의 호평에 따른 스페인 내의 한국미술 관심 열기에도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이번 사태가 지난 99년 전시기획 방향을 놓고 기획자와 관이 정면대립하다 최민 총감독의 사퇴를 몰고온 제3회 광주비엔날레 파행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들이 많다.
한편 김씨의 한 측근은 “고압적 간섭을 당연시하는 관의 지원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적극 후속 대응책을 준비하겠다”며 “절대 사퇴로만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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