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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2 19:05 수정 : 2006.06.23 16:19

그 이름만으로도 슬픔을 자아내는 수단, 소말리아, 그리고 인근의 토고
손기정 선수가 조선 민중들에게 자긍심 됐듯이 토고 민중에게도 좋은 소식 하나쯤 있음 좋겠다

토고와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있던 밤이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토고를 찾았다.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다는 작은 나라 토고. ‘어딘가’라는 막연함이 지도 위의 구체적 지시공간으로 나타났을 때, 왜였을까,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토고는 가나와 베넹 사이에 일자로 그려놓은 눈금 하나처럼 지도 위에 있었다. 가나는 우리에게 얼마간 익숙하지만 베넹이라는 나라도 눈에 설기는 토고와 매한가지. 토고를 중심으로 한 나라씩 짚어가던 내 손가락이 자꾸 느려졌다. 토고의 동쪽 아래로 콩고, 르완다, 앙골라 등의 아픈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고 서쪽으로 바싹 붙어있는 가나,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이 보였다. 지구상의 나라들 중 평균수명이 가장 짧다는 시에라리온. 평균수명이 30세 안팎이라는 시에라리온에서 아이들 세 명 중 한 명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어간다고 했던가. 식량사정과 질병도 문제지만 내전으로 인한 죽음이 큰 원인이라고 했다. 토고는 그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슬픔을 자아내게 했던 시에라리온의 인근 나라였고 서부아프리카에 있었다. 아프리카의 고통을 말할 때 늘 떠오르곤 하는 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과 함께 오랜 기아와 가난, 정치적 불안과 내전으로 신음하는 나라들 속의 토고.

어디나 그렇지만, 아프리카 역시 몇 마디 말로 요약되기 어려운 곳이다. 내가 잠시 들러보았던 아프리카는 내 관념이 기대했던 것들을 가차 없이 뒤집어버리기 일쑤였고,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두근거리는 대지의 힘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동물의 왕국’이 환기하는 원시의 자연과 야생의 생명력을 꿈꾸게 하는 그 대륙에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은 황폐한 황무지들이 존재한다. 야생의 동물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황무지는 계속 자라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모여 있는 대륙이자 기아, 질병, 가뭄, 에이즈 등으로 요약되는 구호대상으로만 바라보기엔 다양한 원주민들이 지닌 삶에 대한 낙천성과 예술적 기질, 일상에 밀착한 싱싱한 생명의 느낌은 또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 생의 신비를 가장 본래적인 의미로 체득하고 있는 듯한 투박하고 건강한 주술성의 율동이 아프리카엔 있었다. 바싹 마른 육신을 파리떼에게 뜯기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무기력한 군상들로 포착되기 일쑤이지만, 그들에게 들이댄 렌즈의 주인인 서구 근대가 욕망한 민족과 국가의 기획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살아있는 부족문화-부족공동체의 자존이 또한 있었다.

아프리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슬픔을 느낀다. 슬픔만큼 치욕을, 또 그만큼한 분노를 느낀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직선에 가까운 국경들. 서방제국들이 그들의 편의대로 식민지 영토를 분할하면서 아프리카의 무수한 종족, 부족, 종교, 문화적 전통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국경들 때문에, 아프리카는 지금까지도 다종다기한 요구가 파생시킨 내전과 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프리카를 피폐하게 하는 분쟁과 내전의 기원에는 제국의 지배역사가 초래한 폭력적인 국경의 기획이 있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보는 슬픔은 해방 정국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에 의해 그어진 우리의 삼팔선이 그렇듯 피억압 민중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며 약소자의 역사를 향한 연민과 연대의 소망을 갖게 한다. 토고도 1차대전 이전엔 독일, 이후엔 영국과 프랑스에 점령되었다가 1919년 영국-프랑스 협정으로 영토가 분할되고, 1960년 프랑스령이 토고공화국으로 독립했다고 한다. 제국주의 폭력 아래 놓였던 약소자의 역사는 저마다의 무게로 아프면서 또한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반복된다. 억압과 착취의 고리를 인간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한 형태를 조금씩 바꾸며 세련되게 변형되는 착취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미래를 부끄럽게 할 터.

가장 부끄러운 것은 제국의 폭력이 저지른 착취의 역사를 너무도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속칭 제1세계의 부는 제3세계의 착취로부터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비인간적인 노예노동과 물자의 착취가 일궈낸 부가 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모른 척한다. 아프리카의 식량 위기와 가난을 심화시키는 가뭄과 사막화의 배후에는 무차별 삼림을 착취해간 1세계의 이기적 탐욕이 존재한다. 빵덩어리와 폐차 직전의 고물차 따위를 적선하듯 베푸는 것으로 황폐의 진원이 달래지지 않는다는 것. 가뭄과 기근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어 죽어갈 때 그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 양심의 죽음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꾸 잊으려 한다.

우리가 이겨서 참 좋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토고가 이겼어도 의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 밤이었다. 토고의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어려웠던 시절,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피억압 조선 민중들에게 자존과 자긍심의 좁은 통로를 열어주었듯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있는 토고 민중들에게도 좋은 소식 하나쯤 있어줬어도 좋았겠다 싶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계절. 우리는 누구일까. 내가 이곳에 태어나지 않고 저곳에 태어났다면 저곳이 나의 우리였을 것이다. 이생 다음의 생에 내가 어디에서 태어나게 될지 우리는 지금 모른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보이는 무수한 국경들은 힘의 역사 속에 구획된 슬프고 부끄러운 감옥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뿐. 약자의, 소수자의, 아픈 자의, 고난 속의 이들과 나누는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통해서만 이 별에 평화가 올 것임을. 사랑이 많은 여름밤들이 넓고 깊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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