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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2 19:20 수정 : 2006.06.23 16:20

서양말에서, 정도를 더하는 ‘등급’이 있다. 원급·비교급·최상급(움직임·상태에서)으로 나누는데, 사람들이 이에 물들어 우리말에 적용하는 탓에 말이 어지러워진 바 적잖다.

우리 익은말(관용어) 가운데, ‘힘껏 하다, 할 만큼 하다, 한다고 하다, 하느라고 하다 …”는 셋 중 어디에 둬야 할까?

‘최선’(最善)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 뒷가지 ‘-하다’를 붙여서 ‘최선하다’를 만들고 ‘가장 낫고 착하다’란 뜻으로 쓸 수 있겠다. ‘선하다·악하다’를 쓰므로 ‘최선의 방법, 최선의 대책, 최선의 인물’이라면 ‘최선한 방법, 최선한 대책, 최선한 인물’로 써야 할 판이다. 그런데, 요즘은 ‘최선하다·최악하다’는 쓰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다’에서 ‘최선’은 본디뜻인 ‘낫고 착함’과는 무관하다.

흔히 영어 베스트(best ‘최선을 다하다’에서 ‘최선’에 ‘온힘·온정성’이란 뜻은 없었다. 번역 과정에서 가져다 붙여 엉뚱하게 굳어진 성싶다. 한자말로는 ‘전력·전심’들이 있다. 이는 서양말 번역이 앞섰던 일본 쪽에서 자주 활용해 쓰는 것을 본다.(最善をつくす, ベストをつくす) 또한 ‘최선한 방법’이 ‘최선의 방법’(最善の方法)으로 쓰이게 된 과정이 짚인다.

‘베스트’에 딸린 말들(do/exert one’s utmost, do/try one’s best, do one’s level best, give one’s best, try very hard)도 그냥 ‘힘껏 행하다, 온힘을 기울이다, 온힘을 다하다, 온 정성을 쏟다’나 ‘전력을 기울이다, 온갖 노력을 하다’면 말이 순해진다. 입으로 하는 말에서 이 정도면 그 세기를 전달하고도 남는다. 우리말에서 등급 표현은 셋 정도가 아니라 그 갑절도 넘는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란 말에서 ‘혼신’(渾身)도 그냥 ‘온몸’일 뿐이다. ‘혼신의 힘’이 ‘온힘’이니 “온힘을 다하다, 온힘을 기울이다, 힘껏 싸우다”가 된다.


그것으로 모자란다고 느낀다면 이는 말하는 이의 신뢰, 듣는 이의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 아니겠는가. 영어의 최상급 표현을 두고 말하자면 오히려 ‘다+하다’의 ‘다’에도 나눠져 있으므로 기계적인 분별로 ‘최선’ 같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만들어 쓸 일은 아닐 터이다. 게다가 이 말은 ‘변명, 합리화’로 쓰이는 때가 많다.

한편, “최고를 다했다, 지선을 다했다”는 쓰이지 않지만, “지성을 다하다, 성의를 다하다, 정성을 다하다”는 말이 된다.

△태극전사들, '최선을 다했습니다' → 태극전사들, 잘 싸웠습니다.

△25년 이상 최선을 다하여 승진준비를 한 수많은 교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 25년 넘게 애써 승진준비를 한 교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때가 되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접근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 때가 되면 학교운영위원회를 가까이하는 데 온힘을 쏟아야겠습니다.

△아쉬운 패배, 최선을 다했다 → 아쉬운 패배, 할 만큼 했다.

△1라운드에서 탈락해 정말 착잡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 1라운드에서 탈락해 정말 착잡하다. 한다고 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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