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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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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너머 서울 시민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일본 시민을 볼 때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교전권’ 되살리는 위험한 일본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나라 사람들은 역사의 고통을 잊을걸까
일본문제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2개월 반이 됐다. 장마가 시작됐다지만 일본 장마에 비하면 훨씬 견디기 쉽다. 음식은 맛있고 지인들은 모두 친절하며, 꽤나 쾌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점도 얼마간 있어서 그 위화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이 연재를 시작했을 때 전쟁체제로 기울어가고 있는 일본사회를 표류하는 배에 비유해 그 위기에 무관심한 일본시민의 모습에서 느낀 불안에 대해서 썼다. 그때 나는 도쿄 교외 K시에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시내 M구에 있다. 요즘 나는 아파트 창으로 보이는 시민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K시에서 일본 시민을 바라보던 때와 같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심야통신'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지났으나 일본 상황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칠 것 같고 후계자엔 강경파 포퓰리스트 아베 신조가 가장 유력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문제, 북조선문제 등에서 강경 일변도인 그들은 이 위험한 게임을 통해 일본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보도도 나왔다. 6월14일 자민당 방위대책소위원회에서 유엔 결의 없이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개정안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오랜 동안 헌법의 제약 때문에 전수방위를 엄수하고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 원칙은 1990년대 후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전쟁에 협력하기 위해 그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해외파병을 실행해왔다. 하지만 이런 특별법들에는 그래도 파병하려면 유엔 결의나 국제기관의 요청이 필요하다는 제한규정이 들어 있었다. 이번 제안은 이 제한조차 철폐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60년 전 침략전쟁에서 패배한 결과 헌법 9조라는 형태로 교전권 포기를 국제사회에 공약했다. 그것은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근본에 속하는 약속이었다. 그 국제공약이 쓰레기통에 내동댕이 쳐질 처지에 몰려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현재 일본의 위험성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 정말 걱정된다. 그것이 요즘 점점 커지고 있는 내 불안의 씨앗이다. * * 지난 6월9일과 10일 창작과비평사와 세교연구소 주최로 중국·대만·일본에서 9개의 비판적 잡지 편집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아시아 연대와 잡지의 역할' 제하의 국제 심포지움이 열렸다. 나도 일본에서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전야>의 이사로서 거기에 참석해 4명의 토론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의 발언 내용 일부를 간단히 소개한다. -<전야>라는 잡지 이름은 일본사회가 지금 '전쟁 전야'라는 위기감에서 붙였다. 일본이야말로 '동아시아' 연대와 발전에 장애요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일본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동아시아'를 정의하자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근대에 일본의 침략이나 식민지지배를 경험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의에 입각하면, 일본이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침략 내지 식민지지배한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와 국민은 역사인식, 사죄, 보상 등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정직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일본에서 진행돼온 사태는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일찌기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설파했고 3·1독립선언은 일본에게 정도(바른 길)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70년대에도 이 나라 민주화세력은 일본의 신식민지주의적 재침략이라는 위기를 맞아 일본에게 '도덕적 경정(更正)'을 호소했다. 이런 호소의 윤리적 정당성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런 호소의 기반이 '서양과는 다른 우리 동양인'이라는 공통성을 향한 막연한 기대였다면 그 기대는 그때마다 호되게 배신당해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와의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지역 침략이라는 길을 선택했고, 전후에는 자발적으로 미국과의 종속적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런 흐름은 과거 몇년간 특히 부시 미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한층 더 노골화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국민 대다수는 이 노선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시 일본에 대해 예전과 같은 호소를 되풀이하더라도 이번엔 배신당하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서 '일본문제'라는 것은 단지 과거 10년간의 우경화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본국민 다수의 의식구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뿌리깊은 문제를 말한다. '일본문제'의 해결은 현재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을 해소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지역 사람들이 자기상(自己像)을 비판적으로 재정립해서 일본의 길과는 다른 길을 지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많은 일본인을 '역사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공통성을 얘기하는 것은 이런 프로세스(과정)를 거쳐야만 가능할 것이다.- 심포지움 1주일 뒤 <한겨레> 책·지성 섹션 <18.0>에 실린 '동아시아 시민을 위하여 건배!'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심포지움에 참가한 이욱연 서강대 교수 기고문이었다. 이 교수는 발제자의 한사람인 대만 천광싱 교수의 “함께 술 마시는 것이 회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동아시아인들의 감정에서 이질감을 씻어내려는 탈식민지와 탈냉전 제의가 아닐까, 라며 호의적으로 썼다. 그렇다면 일찌기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한 것은 ‘이질감’ 때문이었던가? 이 기사를 읽고 나의 우울과 불안은 더 심해졌다. 이 나라 사람들은 역사의 고통을 잊어버린 걸까. 고통을 잊지 않는다는 건 과거에 구애돼 가해자를 계속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확실한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기분좋게 건배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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