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9 17:49
수정 : 2006.06.30 16:43
하디타는 밀라이를, 밀라이는 노근리를 잊었다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강간한다
다음 전쟁과 다음 학살은 어디인가
이란인가 한반도인가 쿠바인가
오래된 컬러사진 한 장을 본다. 이제 막 이삭이 패었을 푸른 벼들 사이의 한적한 논길에 아이들이 마치 오수를 즐기는 것처럼 누워있다. 샤갈의 몽환을 옮겨놓은 듯한 강렬한 채도의 사진 속 한 편에는 벌거벗은 아이가 등을 보이고,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모로 누워있다. 조금 멀리 이편을 향한 채 비스듬히 논길을 가로질러 누워있는 청년의 얼굴이 보인다. 죽음의 공포마저 얼이 빠져버린 듯한 피범벅의 얼굴.
1968년 3월16일 남베트남 송미(Son My)의 미라이(My Lai) 마을에서 종군기자인 로버트 해벌(Robert Haeberle)이 기록한 이 컬러사진은 양민학살에 관한 한 가장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500명 이상의 남베트남 양민들을 살해했던 미라이의 처참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는 이 사진의 제목이 말하는 그대로였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는 무덤 속에서 빛을 보지 말아야 마땅했던 이 끔찍한 학살은 1년 뒤인 1969년 3월 학살을 목격했던 론 레이덴아우어(Ron Ridenhour)가 민주당 의원에게 사건을 폭로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계기로 1969년 11월에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1969년 캄보디아 비밀폭격을 계기로 들불처럼 번졌던 반전시위가 아니었다면 미라이는 진실의 장막 뒤로 숨겨진 채 결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300건 이상으로 추정되는 2차인도차이나전쟁에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은 지금까지도 밀림 속에 잠들어 있으며 고작 중위 한 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미라이 또한 단죄된 것은 아니었다.
미라이로부터 37년 8개월 뒤인 2005년 11월 이라크 북서부의 하디타에서 아이들과 노인을 포함한 민간인 24명이 미군 해병대에 의해 학살된 사건이 불거졌다. 37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하디타 역시 해를 넘겨 세상에 알려졌다. 복수를 빌미로 한 미해병대의 처형식 민간인 학살, 노인과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을 막론한 무차별의 살인, 은폐, 침묵, 발뺌, 미봉의 하디타는 그대로 미라이의 재현이었다. 또한 미라이와 마찬가지로 공표되지 않는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죽음을 등지고 있다.
하여, 맑스의 조롱처럼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그러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비극과 루이 나폴레옹의 희극과 달리 미라이와 하디타의 비극은 그저 비극과 비극의 거듭이자 반복이며 악몽일 뿐이다. 한반도의 노근리 또한 그 더럽고 참혹한 꿈 어딘가에 존재한다.
기억과 망각에 있어서 세계사는 맑스의 19세기적 조롱을 20세기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21세기를 맞았다. 세계는 여전히 미래로부터 그 시를 얻지 못하고 과거로부터 얻으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저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나파르트의 비극이 루이의 희극으로 반복되면서 제정은 붕괴되었지만 2차 인도차이나전쟁에서의 미국의 패배가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패배로 반복됨으로서 희극이 될 조짐을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낙관할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과 기총소사로 400여 명이 학살당한 1950년의 노근리는 미라이와 하디타와도 달리 50여년이 지나서야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보았지만 ‘우발적인 사고’라는 수사의 한미 공동발표문으로 덮여 버렸다. 더불어 121건의 한국전쟁 양민학살은 여전히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다.
1986년 도이모이 이후 베트남공산당은 과거를 어둠 속에 묻어버리고 미국의 손을 잡았다. 양민학살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남한과도 다르지 않았다. 남한은 1992년 수교한 후 6년이 지나서야 유감을 표명했고 다시 3년이 지나서야 사과의 뜻을 전달했지만 그건 베트남의 요구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1995년 수교 이전에도 이후에도 미국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극악한 죄업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다. 하노이에 발을 디딘 클린턴은 “고통스러웠던 과거는 평화롭고 번영된 미래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수사로 모든 것을 끝장내고자 했다. 클린턴에 비한다면 김대중은 진정으로 참전에 대해서 사과한 셈이겠지만 베트남공산당의 침묵과 외면은 그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한편 이라크의 알 말리키 친미정권은 하디타와 쉼 없이 반복되고 있는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허수아비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하디타는 미라이를 잊었고 미라이는 노근리를 잊었다. 그럼으로 반복된다. 과거는 현재를 추행하고 현재는 미래를 강간하며 저주의 역사는 노근리에서 미라이로, 하디타로 종횡무진하며 비극을 반복한다. 한국전쟁에서 인도차이나전쟁으로 다시 이라크전쟁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다음은 어디인가? 다음의 전쟁과 다음의 학살은 어디인가? 이란인가? 한반도인가? 베네수엘라인가? 쿠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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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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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끄럽고 참혹한 반복을 멈추려면 하디타는 미라이의, 미라이는 노근리의 눈을 보고 그 손을 잡아야 한다. 하디타의 원죄는 미라이에 있으며 미라이의 원죄는 노근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 죽음의 사슬을 끊지 않는다면 오늘의 우리는 모두 미래의 죄인들이다. 베트남공산당이 미라이를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고 해서 베트남인들이 미라이를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정권이 한미동맹의 미명 아래 굴종한다고 해서 우리가 노근리를 잊을 수는 없다. 이라크 괴뢰정부가 하디타를 외면한다고 해서 이라크인들이 하디타를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손을 잡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이 반복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인류는 영원히 악몽의 데자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노근리의 영혼은 우리 손으로만 위로될 수 있지 않으며 우리는 노근리의 영혼만을 위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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