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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이수여 할머니는 이제는 보기 드문 망건을 70년이 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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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부터 배운 말총꼬기·망건짜기 “나난 바당 일 몰라 이 일만 해가미 살아왔제”
골무 속 굳은살 쑥스러워하지만 침침한 눈·뻐근한 허리…당연한 노동의 퇴적물
일-휴식 사이 완충 필요하듯 삶도 그러했으면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제주에서 망건 짜는 이수여 할머니
지난봄, 집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다. 당연히 부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책을 읽은 몇몇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내용인즉 한옥의 부엌 동선에 대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낮 동안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 와 다시 부엌일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 힘든 노동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것을 두고 낮 동안의 노동을 풀어 줄 수 있는 스트레칭이 가능한 동선이라고 했으나 몇몇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는 식으로 나무랐다. 부엌일 자체만 놓고 보면 분명 고된 노동이다. 그러나 낮 동안의 노동으로 인해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연이어 감당해야 하는 부엌일마저 없었다면 우리들의 할머니나 어머니의 몸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며 더욱 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옥 오르락내리락 스트레칭 효과
요즈음과 같은 무더위를 견디는 방법 중 이열치열이라는 것이 있듯이 노동 또한 강한 노동으로 굳어진 몸은 완화된 노동으로 풀어야 하는 법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휴식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몸은 강한 노동으로부터 갑자기 주어지는 편안한 휴식을 감당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구조다. 그렇기에 강한 노동을 시작하기 전이나 마친 후에는 그 보다 덜한 움직임으로 몸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종일토록 비바람이 불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들에서 하는 일이 강한 노동임에 틀림없다. 또한 부엌일은 상대적으로 그 보다는 완화된 노동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가 아니라 농경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분배된 노동을 마다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쓰는 아버지나 부엌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나 모두 같이 하루 동안 있을 노동에 대한 준비운동의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절감하며 앞 다투어 하려는 스트레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또한 자신의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하여, 혹은 하루 종일 움직인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자 함이 아닌가. 자신의 몸을 가꾸기 위해서 하는 운동의 앞과 뒤에는 자신의 몸을 풀어 주려고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도 들에 나가 일을 하기 전이나 돌아 온 후에 또 다시 노동을 해야 하긴 하지만 그것이 몸을 풀어주는 노동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참 의아하며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로 미루어 지금의 할머니들이나 어머니의 몸이 병난 것이 노동에 이어지는 부엌일의 가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엌일을 했으니까 이만이라도 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마저도 없었다면 강한 노동과 편한 휴식사이의 완충장치가 없었기에 더 심하게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더불어서 말이다. 세상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반드시 완충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사람, 기계를 가리지 않는다. 한옥은 그 완충장치가 뛰어난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언제나 한옥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불편한 점이 바로 그 공간구조이며 동선이다. 변소에 가는 것도 불편하고 부엌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마당에서 마루로 올라서는 것도 귀찮아하며 마땅치 않은 것으로 꼽는다. 그래서 개량된 주택들에서는 높낮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것이 평면인 것이다.
그처럼 높낮이가 없는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힘들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몸이란 구부리고 펴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게끔 만들어져 있는 것인데 그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면의 공간만을 오가는 사람들의 무릎이나 허리와 부엌에서 마당으로 또 마당에서 마루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허리나 무릎 중 어느 쪽이 더 튼튼하겠는가. 많이 움직여서 쉬 고장이 나고 상할 수 있다고 트집을 잡으면 할 수 없지만 물어보나 마나일 것이다.
‘허생전’에서 매점했던 그 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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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는 이제 눈도 침침하여 보이지도 않고 허리마저 아파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한다. 하지만 난 그니가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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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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