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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씨가 동해를 한국해로, 간도를 조선 땅으로 표기한 영국 고지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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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때 시작 ‘10만점’ 전시회 상 휩쓸어…‘음식우표’에 몰두
‘우취연맹’ 심사위원 도전계획…고문서·고지도로 관심 확대
[이사람] ‘역사·문화예술가’ 꿈꾸는 우표수집광 김기훈씨
올 4월 군 복무를 마친 23살 청년 김기훈씨는 요리와 우표를 접목시킨 ‘역사·문화 예술가’를 꿈꾸는 우표 수집광이다.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미 초등학교 시절 우표수집을 시작으로 착착 준비해오고 있다. 그는 5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우표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우표전시회에서 대금은상(9등급 중 제3등급 해당)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역대 최연소로 받았다. 그는 내년 가을 중국 쓰촨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국제경영학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역사·문화예술가 꿈에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5년 전 인문계 고교 졸업 후 받은 4년제 명문대 특차 합격증을 버리고 중국요리를 공부하려고 1년제 ‘이면희 요리전문학교’를 택하면서 그의 끼는 발동했다. 중국 요리를 배우면서 그는 세계 음식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요리 관련 우표 수집에 몰두했다.
“요리나 음식에 관한 것이면 무작정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남미 것 등 1만점이 넘어요. 공예와 문화와 관련된 것까지 하면 10만점 정도 돼요. 지난달 우표올림픽에서 제가 출품한 음식문화 우표가 가장 희귀하고 종류도 많았어요.”
그는 “우표 한장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모두 담겨 있어 한권의 책이나 다름없다”며 “우표 모양과 인쇄 내용, 발행 당시 배경 등을 자세히 살피면 누구나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표 수집을 위해 1년에 적어도 두세번 외국에도 다녀온다고 했다. 현재 한국인터넷우취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표나 골동품이 수백년간 과연 누구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상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고 했다.
그는 2002년 스페인 세계우표전시회 청소년우취부문 대은상을 비롯해, 2003년 방콕전시회 금은상, 2003년·2004년 우표국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우표전시회 금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김씨는 이런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내년 세계우취연맹(FIP) 심사위원에 도전할 계획이다. 연맹 심사위원은 각국의 고(古)우표 가치를 평가하는 자리로 매년 2명을 선발한다. “향교 훈장이시던 할아버지 밑에서 유교 전통을 이해하게 됐어요. 서예나 그림, 엽전 등 옛것에 대해 유달리 애착이 많았지요. 무역하시는 아버지와 패션디자이너이신 어머니께선 제 일을 믿고 맡겨주셨어요. 부모님은 저금 대신 우표 수집을 권하셨어요. 귀한 거나 비싼 건 외국 친구들과 편지나 이메일 하면서 맞바꿔 모았어요.” 그는 “우표 제대로 수집하려면 영어, 중국어, 불어 같은 외국어가 필수”라고 했다. 그 자신 전세계에 9장밖에 안 남은 희귀 우표를 갖게 된 것도 외국어가 됐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김씨가 최근 우표 외에 각국의 고문서, 그림 등 수집·연구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지난달 세계우표전시회에 참석했다 뉴욕의 한 고서점에서 ‘한국해’(Sea of Korea)가 표기돼 있는 18세기 영국 고지도 2점을 발견해 ‘거액’을 주고 구입해 오기도 했다. 그는 “문화와 예술 분야는 자원과 자본 모두 부족한 우리가 동아시아 허브 역할을 하기에 딱 좋은 분야”라며 “지금까지 익혀온 요리와 우표수집을 밑천으로 전통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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