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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5:55 수정 : 2006.08.11 14:15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

레바논 남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매스컴에서 그 지명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다
전쟁의 공포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란 그 아이
테러리스트로 만들지 않을 세상의 정의는 어디에

레바논의 탄식
퍼스컴 화면에 ‘레바논 동부, 이스라엘이 병원을 폭격한 듯’이라는 문자가 떴다.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넷판 제목이다. 기사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동부 바알벡을 폭격했으며, 병원과 민가도 공격당해 민간인 다수가 죽거나 다쳤다”고 전했다.(이하 보도기사 인용은 www.asahi.com 참조) 오늘은 8월3일이다. 서울에서 독일로 온 지 한달이 지났다. 여행중에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요즘 매일 뒤셀도르프대학에 나가 퍼스컴으로 인터넷 신문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 도무지 느긋한 마음으로 지내기 어려운 상황 탓이다 .

지난 7월30일에는 레바논 남부 카나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다수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십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살해당 한 어린이들 중 15명은 장애아였다. 이스라엘은 일반시민에게 퇴거하도록 권고했다고 주장했으나 격심한 공격으로 도로가 파괴되고 가솔린과 차량이 부족한 가운데 자가용차가 없어 값비싼 합승택시를 빌릴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병약자들이 뒤에 남았다가 희생당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 공격을 “최대한 강한 어조로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푸 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즉각 무조건 정전을 요구하며 “세계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맞서자”고 호소했다. 유엔 안보리의 긴급회의에서 비상임이사국 카타르가 “이스라엘군의 의도적인 공격”을 비난하면서 국제 조사단 파견을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제시했으나 미국이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 프랑스가 “의도적인 공격”과 “비난”이란 말을 빼고 “강한 유감의 뜻”이라는 정도의 표현에 그치는 타협안을 작성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구미 제국의 움직임을 자신들에 대한 ‘청신호’로 받아들여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7월31일부터 48시간 폭격중단에 응했을 뿐 그 시한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공격을 재개했다.

이번에 병원이 폭격당한 바알벡은 원래 이스라엘의 1982년 레바논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시아파 레바논인이 헤즈볼라를 결성한 거점지역이다. 그때의 침공은 요르단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본부를 옮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파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군이 감행한 것이었다. 근본을 따져본다면 팔레스타인 난민을 발생시킨 건 이스라엘이다. 나아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낳은 것도, 헤즈볼라를 탄생시킨 것도 이스라엘 자신이다 .

1982년에는 사브라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이스라엘군의 지원을 받은 기독교도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전세계가 그 사건을 잊는다해도 당사자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뒤 오래 계속된 내전이 최근 마침내 종식됐는가 했더니 곧바로 다시 이번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현 이스라엘 총리는 82년 전쟁을 주도한 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충실한 후계자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자행해온 학살행위의 일람표에 새로 ‘카나 학살’이라는 한 항목을 추가했다. 설사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 무장세력이 철저히 토벌당한 다 하더라도 이런 무자비한 학살은 언젠가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제2의 ‘9·11’을 자초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국내의 리버럴파 논객인 엘다르는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에 대해 “아무리 걸어도 계속 잃기만 하는데도 본전을 건지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베팅한 끝에 몽땅 잃어버리는 갬블러(도박꾼)처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스라엘 모습은 오히려 다른 사람 집에 침입해 저항하는 사람 한 명을 죽여버린 뒤 “이젠 되돌아갈 수 없어, 차라리 가족 모두 죽여버리는거야”라고 각오를 다진 강도처럼 보인다. 철저히 악해지기로 결의한 자의 악 그 자체에 취한 듯한 냉소적인 광기가 느껴진다. 지금 그 광기에 맞닥뜨린 현지 레바논인이나 팔레스타인 난민의 공포와 절망은 얼마나 엄청날까.

아흐마드는 무사할까. 보도에 혹시 그가 사는 레바논 남부의 난민 캠프 지명이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아흐마드에 대해서는 전(‘심야 통신’ 16번째 글)에 쓴 적이 있다. 그는 우리 부부의 양아들이다. 그의 집안은 1947년(이스라엘이 건국한 해) 이래 난민이며, 부친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순교’했다. 어머니와 아들 둘, 딸 둘 해서 5인 가족이다. 우리는 지난 5년간 그에게 소액의 교육원조금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현재의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흐마드와 같은 난민 캠프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전쟁과 학살의 공포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란다. 게다가 레바논 정부는 그들 팔레스타 인 난민을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면서 제대로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데 레바논 사회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는 그들이 장래의 희망을 갖기란 어렵다. 그렇게 자란 이들이 “온건한 일반시민”이 될 기회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건 뻔한 이치다. 나는 우리 아들 아흐마드가 ‘테러리스트’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물며 ‘자폭공격’ 따위로 죽기를 바라겠는가. 그러자면 이 세상에 아직 정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도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세계는 그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레바논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국정부는 어떻게든 태도 표명을 했나? 지식인이나 시민은 뭐든 활동을 하고 있 는가? 여기서는 잘 알 수 없기에 답답하다. 예전에 일본제국은 ‘폭도 토벌’이라 칭하며 항일의병이나 양민을 살륙했다. 남만주에서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철저한 토벌작전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을 ‘치안숙청공작’이라 했다. 우리는 그런 역사적 경험을 지닌 민족이다. 우리는 또 여수, 순천, 제주, 거창, 광주 등의 지명을 특별한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는 민족이다. 구미의 시각만으로 중동을 방관하면서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탄식에 무관심할 리가 없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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