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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전승되던 박첨지 놀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26호다. 김동익씨는 박첨지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놀이 전반의 책임자 노릇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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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농사 짓느라 밭일 바빠 저녁밥 먹고 느지막히 놀이 준비
그날따라 한사람 빠져 죽을 맛이라도 말 꼬이는 게 구경꾼들엔 되레 볼거리
어떤가, 본디 놀이가 그런 것 아닌가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서산 박첨지놀이 연희꾼 김동익씨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길 다니면서 자못 흥미로운 일은 마을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여염집의 살림규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엌을 넌지시 들여다보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일 중의 하나다. 부엌을 보려면 반드시 안주인의 허락을 맡아야 하니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침 그날이 마을의 축제와도 같은 놀이가 벌어지는 날이라는 정보를 얻어 들으면 뛸 듯이 기뻤다. 횡재라도 한 양 마음은 들뜨고 어서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비단 놀이뿐 아니라 그 마을에 전통적인 방식의 삶을 이어오거나 수공예품을 만드는 이가 있어도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웠다.
양반풍자 꼭두각시놀이와 흡사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태껏 그렇게 다니면서 눈에 띄는 마을놀이가 있으면 거개 어울려 같이 즐기곤 했다. 때로는 낯설기도 했지만 그 어색함은 나의 흥미로움과 그들이 내뿜는 신명에 가려졌고 판에 어울렸는가 싶으면 금세 그들과 동화되어 있기 일쑤였다. 서산의 음암면 탑곡리에서도 그랬다. 그 곳에 갈 때는 아예 날을 받아서 갔다. 아마 8~9년 전의 이른 봄이었지 싶다. 이장님을 통해 언제 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 간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도착했지만 마을은 조용하기만 했다. 달래를 주농으로 하는 마을인지라 모두 밭에 나가서 일을 할 뿐 그 누구도 놀이 준비를 하지 않아 썰렁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장님을 수소문해서 왜 이리 마을이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걱정 말라며 허허 웃기만 하다가 저녁이면 마을회관에서 한바탕 놀 것이니 그때 다시 오라는 말만 남기고는 밭으로 종종걸음을 놓는 것이 아닌가. 미심쩍었지만 어쩔 것인가. 저녁에 판이 벌어지더라도 이미 오전부터 들썩이는 여느 마을과는 너무도 달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릴없이 마을 근처를 배회하다가 해거름이 되어서 다시 마을회관을 기웃거렸다. 다행히 놀이 준비를 하는듯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이는 김동익씨였으며 놀이의 책임을 맡고 있는 분이었다.
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왜 이리 마을 사람들이 모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래서 언제 놀겠냐고 했더니 “인자 곧 나올껴. 암만 노는 게 좋지만서도 저녁은 먹어야 할 꺼 아녀.”라며 무사태평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연희자들이 모일 동안 그이에게 놀이에 대해 들었더니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이와 너무도 흡사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놀이의 제목 그대로 첫째 마당인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가 주인공이며 자신이 그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놈이 마누라가 둘이라고 했다. 그도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해 어느 해에는 길 떠났다가 둘째 마누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첨지가 첫째 마누라에게는 시큰둥하고 둘째 마누라만 살갑게 대하자 그 둘 사이의 골이 깊어져 이윽고 분가를 하게 되는데 살림마저도 작은 마누라에게 후하게 줘서 마을 사람들이 첨지를 조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둘째 마당은 평안감사 마당이며, 감사라는 사람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애를 쓰기는커녕 저 홀로 매를 풀어 꿩 사냥에만 열중하는 못된 관리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결국 매가 잡아 온 꿩고기를 잘못 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고 상여를 타고 나가는 그의 주검 앞에서 고개 숙인 아들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셋째 마당은 절 짓는 마당이다. 마을 사람들이 시주를 걷어 공중사라는 절을 짓고는 장님과 같은 천대받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놀이가 끝나게 되니, 주 내용은 권선징악이며 부처의 가피에 힘입어 평온한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다. 아낙네들 수다, 비온 뒤 죽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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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마지막에 지은 공중사라는 절. 안에 계신 이는 부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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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글쓰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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