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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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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없이 ‘고향’을 묻곤 하는 독일사람들에게 놀랐다
‘하이마트’란 말에 담긴 집단적 아이덴티티
여기는 ‘독일인의 나라다’라는 폭력이 아닐까
비행기를 탄 나는 어디에도 내리고 싶지 않았다
하이마트2개월 남짓 유럽 체류를 끝내고 9월4일 서울에 돌아왔다. 경유지 나리타 공항에서는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잔뜩 낀 구름이 드리운 대기는 습기를 듬뿍 머금어 무더웠다. 공항청사 창 밖으로 보이는 일본의 풍경은 서먹서먹할 뿐 그리움이나 안도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 나라에 내 직장이 있고, 내 집이 있으며, 우인과 지인들도 있다. 그런데도 여기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서울로 가는 것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러면 서울에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독일에 죽 머물고 싶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1983년에 처음 유럽여행을 했을 때, 런던에서 돌아오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도쿄행으로 갈아 탔다. 공항에 내걸린 커다란 항로지도를 보니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사방으로 뻗은 선 한 줄이 도쿄에 닿아 있고 다른 한 줄은 서울로 이어져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상념에 잠겼다. 왜 나는 서울이 아니라 도쿄에 가야 하나? 한국은 내 조국이고 일본은 외국인데. 그것은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나라 말밖에 할 수 없고, 생활기반이 있는 곳이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나라 정부는 (국민 다수도 그렇지만) 우리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환영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에는 생활기반이 없고 지인과 우인도 없다. 마침 당시는 전두환 정권 시대였고 내 형들은 옥중에 갇혀 있었다. 이륙한 비행기 속에서, 이대로 어디에도 내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지금 한국 군사정권시대는 끝나고 나는 올해 4월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때의 감각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독일 각지에서 강연할 때 가는 곳마다 청중들로부터 흔히 받은 질문이 있다. “당신의 하이마트(Heimat)는 어딘가?” 하이마트란 사전적으로 번역하면 ‘고향’이란 의미지만, 독일어 하이마트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렇게 간단히 옮겨놓을 수 없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나폴레옹전쟁 시대에 침략국인 프랑스에 대항해 근대적인 통일국가를 수립하려던 당시의 정신운동에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에서 하이마트 의식의 미적인 양식화가 이뤄졌다. 20세기를 맞을 무렵 이 의식은 반유대주의, 대독일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그것이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귀결을 맞았던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하이마트’라는 말이 풍기는 정서는 근대 독일인의 집단적 아이덴티티에 뿌리깊이 침투해 있었으며,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 이 말은, 설사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일종의 거북함 같은 게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독일은 적어도 외견상으론 나치즘의 과거를 청산하고 피해자에게 사죄와 보상도 하면서 새로운 ‘유럽의 정신’(이것은 이것대로 큰 문제지만 여기서는 논할 지면이 없다. ‘심야통신’ 21번째 글 참조) 아래서 국민통합을 꾀하고 있다. 독일에서 내 강연 청중의 대부분은 민주적이고 리버럴한 시민들이었으며, 극우사상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일반시민 다수가 전혀 악의없이 ‘하이마트’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는데 나는 놀랐다. 게다가 “당신에겐 하이마트가 없어 안됐지만 우리에겐 그 게 있어서 다행이다”는 뉘앙스까지 풍겼다. 그런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하이마트’가 단순히 ‘태어난 고향’이라는 의미라면 내가 태어난 고향은 일본 교토다. 그러나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인 머조리티(다수파, 주류)한테서 혈연적 또는 문화적인 일체감을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일본 국가나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나 운명공동체의식 따위는 전혀 없다. ‘고향’ ‘혈연공동체(가족)’ ‘국가’ 이 3자는 엄밀하게 말하면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그 구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하이마트의식이다. 어떤 언어를 공유하고 어떤 풍경이나 기후에 대한 향수, 어떤 음악이나 음식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즉 어떤 ‘하이마트’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로만 하나의 사회가 구성된다는 사상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독일에는 약 300만명의 터키계 시민들을 비롯해 출신지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많은 시민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들에게도 “네 하이마트는 어디냐”라고 물을 건가? 그런 물음은 여러 복합적 여건속에서 “여기는 독일인의 나라다, 불만 있으면 나가”라는 폭력으로 전화할지 모른다. 지금 이슬람계 시민은 그런 압력에 노출돼 있지 않은가.
여야당 대연정을 기반으로 한 메르켈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대항세력이 무력화되고 국민 다수가 점점 무기력해지는 동시에 현상에 대한 초조감이 극우세력을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다. 독일사회의 장래는 비관적이다. 독일조차 그런 것이다. 하물며 고이즈미 총리나 아베 신조를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일본에 희망이 있겠는가. 그리고 우울하게도 어쨌든 나는 그런 일본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서울에 돌아와 일본에서 보내온 신간 번역서를 펼쳐봤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고국 상실에 대한 성찰 1>(미스즈쇼보)이다. 그 속의 책이름과 같은 제목의 에세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고국 상실(exile)은 그것을 생각하는 한 기묘한 매력에 사로잡히지만 경험하기엔 최악이다.” 사이드는 1984년에 쓴 이 에세이에서 ‘에그자일(exile)’을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대중적 제도들에 대항하는 선택지”라고 했다. “에그자일은 알고 있다. 세속의 우발세계에서는 고향=가정(home)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걸. 경계나 장애는 익숙해진 영역이라는 안전권에 우리를 가둬 두는 것이지만, 감옥이 될 수도 있다.” 사이드는 에그자일(망명자)로서의 주체성을 더욱 엄밀하게 드러내는 구체적인 예로서 망명 유대인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사상을 들고 있다. 사이드에 따르면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집에서 편히 쉬지 않는 것이 도덕의 일부가 된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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