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8 18:45
수정 : 2006.09.28 18:45
사람 사이 만남을 두고 ‘접촉’ 또는 ‘접촉하다’란 말을 쓴다.
본디 신체 접촉 따위 동물이나 사물이 서로 닿거나 마찰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람 사이 관계나 만남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니면서 만남·사귐·회담·교섭·관계·대화 같은 말을 제치고 이 말이 판을 치게 된 배경은 뭔가?
교통·통신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무척 편하고 빨라졌지만 말버릇 경계들이 함께 허물어지면서 말글 쓰임도 어긋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접촉·접속 … 들도 성분상 탈바꿈 상태에 놓인 말이다.
한자말로 촉접(觸接)은 적의 동태를 살피는 일을 가르켰고, 접선(接線), 접우(接遇), 접반(接伴), 접대(接待) …처럼 사람을 맞는 일에 쓰던 ‘접’자 돌림들이 있긴 했으나 접선·접대를 빼고는 죽은 말이다. ‘접선’은 수학에서나 염알이꾼말로 쓰인다.
사람 관계에서 들먹이는 ‘접촉’은 여전히 상스럽다.
“접촉이 잦다, 접촉을 끊다, 접촉을 삼가다, 접촉을 강화하다, 접촉을 가지다, 접촉을 미루다, 접촉을 앞당기다 …”들은 “자주 만나다, 발을 끊다, 만남을 삼가다, 관계를 돈독히하다, 만나다, 만남을 미루다, 만남을 앞당기다” 정도로 순화해 쓸 말이다. ‘접촉’이 단독으로 만남·대화·통화·회합·의사 타진 … 들의 대용으로 쓰는 일은 말을 부려쓰는 이가 지닐 태도가 아닌 까닭이다.
‘실무접촉, 예비접촉, 공식접촉, 물밑접촉’의 접촉 역시 만남·교섭으로 바꿀 일인데, 굳이 써서 협상이 잘 된다면 못 쓸 것도 없겠다.
‘접촉·접촉하다’는 말이 많이 쓰이고 유행하게 된 배경에 영어(contact, touch, osculation/ make contact, come into contact with, come into touch with …)가 있다. 적절하지 못한 번역도 한몫을 했을 터이다.
남북 사이에 그런 ‘접촉’이라도 많았으면 좋겠으나 ‘진정한 만남’이 잦아지는 것만은 못 할 터이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치인’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접촉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 ~ ‘정치인’과 자주 어울린다 점이다. ~ 잦다고 한다.
△오는 16일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갖자. 모두 4명이 실무접촉에 참석할 것이다. → 오는 16일 금강산에서 실무모임을 열자. 우리는 네 사람이 가가겠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영화나 노래도 접촉하다 보니까 한국어에 대한 흥미도 많아졌다 → ~ 한국영화나 노래를 자주 대하다 보니 한국말에 재미가 붙었다.
△중국 경제정책의 거물을 접촉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천연가스 문제를 논의한다. → ~ 거물을 만나는가 하면 ~.
△하지만 이미 유럽연합은 연립정부가 구성되면 새 정부와 접촉하고 원조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부분적으로 원조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 새 정부와 대화도 하고 원조도 재개하겠다는 뜻을 ~.
△현재 일본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이 퇴직 전 직무와 관계 깊은 기업에 2년간 갈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퇴직 공무원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의 직원들과 접촉하는 것을 막는 법률은 없습니다. → ~ 부처의 직원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막는 법률은 없습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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