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01 21:46 수정 : 2006.10.01 21:46

저공비행

화려하게 도배해도 촌스런 정신세계

얼마 전에 에스비에스(SBS)의 주말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인 〈엑스맨〉이 중국 하이난에 다녀왔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촬영 장소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하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여걸 식스〉도 괌에 갔다 왔는데, 그래도 그 프로그램에서는 해변도 보여주고 스카이다이빙도 했고 게임에 현지인 엑스트라들을 출연시키며 외국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엑스맨〉 하이난 편은 한국의 어느 리조트에서도 찍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이런 식의 자원 낭비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출연자의 현지인 비하 발언이었다. 프로그램 초반부에 가수 이승기가 싸이에게 “중국 현지에서 보니 더욱 현지인 같다”고 말했는데, 그게 인터넷을 통해 중국까지 건너간 것이다. 에스비에스에서는 아직 정식 사과를 하지 않았고 계속 그럴 수도 있지 않으냐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뭐가 문제일까?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린 죽어라고 한류라는 상품을 아시아권 국가에 팔려 기를 쓰고 있다. 〈엑스맨〉 역시 중국에 수출되는 연예 상품이다. 그런데 그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있으면 중국에 방영될 프로그램에 나와서 ‘못생긴 현지인’을 빗댄 발언을 했고 방송국에서는 그걸 그냥 넘어가도 되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최종 편집본에 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나사 빠진 짓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들에게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얼마 전에 한국인 비하를 했다는 모 대만 프로그램에서처럼 노골적으로 중국인들을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지 ‘못생긴 한국인’을 ‘현지인’에 빗대는 농담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말실수야 누구나 한 번 정도 할 수 있으니 관대하게 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발언이 촬영되고 편집되고 방송되는 동안 뭐가 문제인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답은 하나다. 우리가 여전히 촌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엑스맨〉의 하이난 특집은 아무리 호사스럽게 꾸며도 마인드 자체는 촌구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촌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으려면 ‘촌’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먼저 알고, 그 다음으로는 그 세상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초적인 에티켓이다. 멀쩡한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 가리면서 하는 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적인 전술의 문제다. 그리고 그 전술은 악의의 결여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원론을 배우고 테크닉을 익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국제적인 세계의 실용 에티켓을 배우지 못한다. 일단 우린 대다수가 ‘촌’에 살고 있고 그 촌의 작은 무리의 정신세계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어느 정도 거기서 벗어나도 될 법한 직업인 연예인들은 더 심하다. 가끔 〈상상플러스〉(KBS2)와 같은 버라이어티 쇼를 보면 꼼꼼하게 상하구조로 계급이 짜인 조직의 일원들이 야유회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에티켓과 권력구조가 안으로 굽어 있는 시스템에 속한 사람들은 자주적인 사고를 에티켓에 투영하지도 못하고 실용화할 수 있는 일반론으로 확장하지도 못한다. ‘현지민’ 농담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아마 그 사람들은 요새 이정이 들고 나오는 ‘태국 청년’ 농담이 어떤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 안 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남에게 거슬리는 소리를 하려면 적어도 자신이 남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고 말해야 한다. 그걸 모른다면 그 사람들은 아무리 명품으로 몸을 도배해도 그냥 ‘촌스럽다.’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