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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2 17:24 수정 : 2005.03.22 17:24

“연극인생 40여년…우리는 동갑내기”

“나는 이제, 죽이는 데 진력이 났어. 그러니까, 살아가는 데 말이야…. 때때로 그런 생각 안하나? 어서 우리보다 빠른 놈이 나타나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죽여주지 않을까 하고…”

거칠고 삭막한 황야에 서있는 이동식 숙박업소에서 늙고 지친 두 기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남을 죽임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찾았던 그들은 이제 죽음과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자신들을 천천히 겨울쪽으로 이동시키는 지구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냉혹한 서구문명과 맹목 사회 조롱

21일 밤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지하 연습실에 두 늙은 배우 이호재씨(64)와 전무송(64)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극 중 대사처럼 40여년 동안의 연극무대에서 수많은 작품과 배역들을 ‘죽여온’ 1941년생 두 동갑내기의 얼굴에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두 기사의 얼굴이 겹쳐진다.

두 사람은 오는 24일부터 4월10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에서 두 기사로 무대에 오른다. 1962년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연극학교 동기인 두 사람이 <천년의 수인>이후 7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화제의 무대다.

<돈키호테>에서 소재를 따온 이 작품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 법칙에 따라 가차없이 사람들을 죽이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두 노기사의 이야기를 통해 냉혹한 서구 문명과 그런 문명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베쓰야쿠 미노루가 1987년에 발표해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지난해 <바다와 양산>의 연출로 평론가협회 선정 베스트 3 및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송선호(42)씨가 연출을 맡았다. 국내 초연이다.


“자주 만나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은 없어요. 또 연기를 맞추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도 없고. 저 친구가 내 부족한 것을 많이 보완해주니 오히려 편하죠.”(전무송) “우리 둘을 두고 나를 릴랙스(이완)의 배우다, 무송이더러 텐션(긴장)의 배우다 구분짓는데 다 틀린 말이야. 서로 안에 다 들어있어요,”(이호재)

긴장·이완, 우리 안에 있어

그러면서 두 친구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부담스러워하면서 모처럼 자신들이 함께 서는 무대에 쟁쟁한 후배들이 동참해준 것을 무척 고마워했다. 종2 역을 맡은 정규수(48)씨는 “두 선배들이 연습을 하면서 ‘연극적인 진실과 삶의 진실은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면서 “서로에게 ‘삶의 동지’ ‘연극적인 동지’가 되고 있는 게 부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종1의 전진기(38)씨도 “이호재 선생님이 ‘각 일병’을 좋아하셔서 연습이 끝나면 꼭 한 사람 당 1병씩 소주를 시켜놓고 각자 따라 마시게 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한다, 주로 연극인의 자세와 삶 등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거들었다.

연출가 송선호씨 또한 전무송씨의 사색적이고 묵직한 연기와 이호재의 유연하고 편안하며 순발력 있는 연기가 앙상블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그는 “워낙 베테랑들이어서 요구할 것이 별로 없다”면서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그 분들이 갖고 있는 것을 꺼집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묵직함과 편암함 아우러져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대형화로 치닫는 공연물의 홍수에 떠밀려 점점 왜소해져 가고 있는 연극판에 모처럼 함께 선 중후한 두 배우의 저력있는 연기가 기대된다. (02)765-547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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