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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5 18:42 수정 : 2005.04.05 18:42

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임진왜란은 출병”‥임나본부설 그대로

일제때 조선, 일본 일부인듯 한술더 떠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만든 후소사판 교과서가 마침내 검정을 통과했다.

검정 신청본과 비교해 보면, 한국 전근대 시기에 관한 서술이 긍정적으로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임나일본부에 관한 것이다. 2001년에 발행한 역사 교과서(이하 2001년판)에는 ‘임나를 지반으로 한 일본’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2005년 신청본(이하 신청본)에서는 ‘임나를 거점으로 한 야마토조정’이라고 더욱 분명히 서술했다. 그러나 2005년 합격본(이하 합격본)에서는 그냥 ‘야마토 조정’이라고 수정했다. 둘째, 당과 신라,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신청본에는 모두 ‘복속국’이라고 표현했는데, 합격본에서는 ‘조공하였던’ 국가로 상대적으로 완화했다. 셋째, 신청본에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이 입은 피해에 관한 서술을 모두 삭제했는데, 합격본에는 2001년판의 내용 그대로 복원됐다. 이런 서술 변화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요구가 반영했다고 판단되는데,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극히 한정된 부분이지만 객관적으로 서술하려한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신청본에서 심하게 왜곡했던 것을 검정 과정에서 2001년판 수준으로 되돌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2001년판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고, 그 당시 한국 정부가 요구한 수정 요구는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여전히 ‘침략’이 아니라 ‘출병’으로 표현하고 있고, 임나일본부설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을 ‘이조(李朝)’로 비하하고, ‘조공’의 개념을 복속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합격본에는 2001년판보다 한국사를 더욱 왜곡한 서술도 있다. 우선 유구(오키나와) 및 에조치(북해도)와 같은 항목으로 조선을 서술했다. 그 결과 마치 조선이 오늘날 일본의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중국은 별도의 항목에서 따로 서술했다.

일제 시기 조선은 일본의 ‘지방’ 중 하나였다. 조선의 위상을 유구, 에조치와 동렬에 놓은 것은 조선이 일본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역사적 추세라는 점을 암시하는 복선 깔기 작업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2차대전 이전의 역사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새역모의 역사관으로 볼 때, 조선(한국)을 식민지로 여기는 의식의 표현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대방군에 대한 서술도 2001년판에 없던 대목이다. 이 서술은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여기서 대방군을 ‘중국이 조선반도에 설치한 군으로, 그 중심지는 서울 근처’라고 했다. 대방군의 중심지를 서울 근처로 보는 것은 극소수 일본 학자의 주장으로, 근거가 박약하다.

이런 사실들로 볼 때 이 교과서가 한국 고대사를 보는 관점은 여전히 ‘타율성론’에 입각해 있다. 연표에 낙랑군을 한국사의 첫머리에 놓아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그 상징이며, 임나를 별도 항목의 제목으로 끌어올려 ‘신라의 대두와 임나의 멸망’으로 서술한 것 등은 그 실상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후소사판 교과서는 한국사의 종속성을 강조한다. 비록 복속국이라는 표현은 조공국으로 바꿨지만, 신라와 조선이 중국에 예속됐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복속이라는 표현도 원래 2001년 검정 신청본에 있었는데, 스스로 조공으로 수정한 것이다. 그랬다가 이번 신청본에서 다시 살려냈고, 검정 과정에서 수정됐다. 이를 봐도 새역모의 속내를 알 수 있다.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노골적 표현 피해 ‘식민지 근대화’유지

조선인 물자 강제동원 폭력성 언급없이

검정을 통과한 후소사판 교과서의 근현대사 관련 서술은 전체적으로 2001년판의 수준과 비슷하다. 2001년에 비해 더욱 ‘개악’됐던 2005년도 검정 신청본(이하 신청본)이 다시 2001년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그러나 이는 후소사판 교과서의 역사 서술이 ‘개선’됐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몇몇 대목의 ‘개악’은 검정 과정에서 고쳐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2001년 후소사판 교과서 자체가 이미 여러 역사 왜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2001년 이후 한국 정부가 제기한 역사 왜곡에 대한 수정 요구는 이번에도 수용되지 않았다.

근현대사 부분에서 개악된 대표적인 부분이 조선의 근대화 문제다. 가령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항목의 제목이 2005년 합격본(이하 합격본)에서 ‘조선의 근대화와 일본’으로만 바뀌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하는 데 공헌했다는 서술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골적 표현만 교묘하게 다듬은 결과다.

▲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조선반도와 일본’이라는 칼럼은 이른바 ‘한반도 흉기론’을 제기하면서, 일본의 안전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민족을 지배해도 좋다는 역사 인식을 은근히 전하고 있다. 이 칼럼은 ‘선량한 일본’을 부각시키는 한편, 청과 러시아가 조선 문제를 둘러싼 ‘악의 축’이란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서술하면서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변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호도하고 있다. 이런 서술은 청-일, 러-일 전쟁을 ‘조선 침략’ 또는 ‘대륙 침략’으로 명확히 규정한 일본서적신사의 서술과 비교하면 뚜렷이 대비된다.

신청본에서 “(조선 안에서) 일부 병합을 받아들이는 의견도 있었으나”라는 내용은 합격본에서 사라져, 2001년판의 수준을 유지했다. 또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근대화에 노력했다”는 신청본의 표현도 합격본에서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여러 정책을 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 표현은 2001년판에도 없는 내용인데, 나름대로 진전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서술한 부분에는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진행된 ‘개발’을 강조하는 별도의 칼럼이 실려 있다. ‘식민지 개발’의 서술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1937년 이후 전시동원 체제에 관한 설명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신청본에서는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에 대한 강제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합격본에서도 이런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강제동원의 폭력성을 분명히 서술하지 않았고, 물자에 대한 강제동원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저항한 조선인의 존재에 대한 서술도 없다. 식민지 지배를 은근히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후소사 검정 합격본의 이런 ‘서술 기조’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달렸다. 큰 논란을 일으켰던 2005년 검정 신청본에 비해 몇몇 표현은 완화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2001년판인 현행본의 서술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따라서 2001년판을 기준으로 이번 합격본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후소사판 교과서가 발행되기 이전인 1997년 당시, 일본 각급 학교가 사용한 7종의 역사교과서는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인정하고 이런 맥락에서 군 위안부의 존재도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번 검정 과정에서 ‘사실’만 바로잡고, 역사 인식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일본 문부성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1982년 일본은 스스로 ‘근린제국조항’을 만들어 교과서 집필에 적용했다. 후소사판 교과서는 이를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일본 문부성이 역사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도 여기에서 비롯된다.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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