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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7 19:20 수정 : 2005.04.07 19:20

한국 형사절차 혁명 위하여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가 ‘영구혁명’을 주창하고 나섰다. 선량한 눈의 이 법학교수는 한때 안기부와 숨바꼭질을 벌이며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맹렬한 운동권 인텔리였다. 그의 ‘전력’을 감안할 때 21세기판 영구혁명론은 새삼 눈길을 끈다.

그 이론은 최근 그가 펴낸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박영사)이라는 책에 집약돼 있다. 그 제목만으론 무슨 내용인지조차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모양새도 법학 교과서를 닮았다. 이런 책이 영구혁명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사법체제 민주화 요원
국내외 이론적 성과 총괄
관련 학설 비판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란, 법에 반하여 수집된 증거를 판결근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형사상 원칙이다. 1960년대 얼 워렌 대법관이 이끈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른바 ‘형사절차혁명’을 통해 이 법칙이 자리잡았다. 지금은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미란다 원칙’ 등이 확립된 것도 이 때다. 한마디로 범죄자를 체포·구금·기소·판결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폭력적 방식의 수사를 배척하자는 형사법이론이다.

조 교수는 이 책에서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형사사법의 민주화를 위해 형사절차의 이론가와 실무가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현재진행형의 주제”라며 “한국에서 형사절차혁명은 ‘영구혁명’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영구혁명은 헌정체제 전복이 아니라 바로 그 헌정체제가 보장한 인권으로 돌아가자는 혁명이다.

이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사법체제의 민주화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도 검찰·경찰의 강압수사가 불거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함정수사나 감청에 의한 증거수집은 보다 ‘근본적’인 논란거리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생명과 자유가 범죄인에 의해 위험해지는 만큼, 범죄인으로 생각되는 자들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수사기관의 위법적 방법에 의해서도 (생명과 자유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재생산”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런 현실을 타파하는 “한국판 형사절차혁명을 위해 국내외 이론적 성과를 총괄”했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의 사례를 짚는 한편, 관련 판례와 학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는 이 책을 1987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에게 바쳤다. 박종철은 그의 고교·대학 후배다. 한국의 헌법은 고문금지와 자백배제법칙을 규정했지만, 박종철은 참고인 신분으로 연행돼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조 교수 역시 1993년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에서 연구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그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국가기관의 폭력에 의해 어떻게 ‘배제’됐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경험한 학자다. 법학교수들이 사법시험 강의에 매달리는 풍토 속에서 그는 이 책을 통해 법이론과 한국사회의 접점을 찾아 ‘실천적 법학’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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