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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0 17:45 수정 : 2005.04.10 17:45

마산 진동리 고인돌 무덤떼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A군 고인돌 시신자리 발굴현장. 방대한 묘역을 원형으로 구획해 놓았다.



마산서 묘역 두른 20여기 위세 과시…계층분화 확인
춘천선 3000년전 마을유적 발굴 청동기 전기 윤곽

청동기시대 이땅의 사회상과 옛 사람들의 생활풍경을 간직한 고고유적들이 지난주 잇따라 세상에 다시 나왔다. 기원전 6세기께 경남 마산지역 지배자들을 묻은 고인돌 무덤떼가 발견됐고, 강원도 춘천에서는 돌널무덤(석관묘)과 주거지, 논·밭 등을 갖춘 3000년전 마을터 윤곽이 드러났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는 최근 마산 진동면 토지구획정리지구터에서 발굴설명회를 열어 원형, 네모꼴의 묘역 등을 두른 대형 고인돌 20여 기와 석관묘 등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 대형 고인돌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지역 유력자들의 무덤으로 보고있다. 각기 둘레에 넓은 도랑(주)을 파고, 흙으로 무덤가를 두둑하게 쌓아올리는 봉토기법을 썼으며, 그 흙이 쓸려내리지 않도록 돌을 둘러 위세를 과시한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 유물의 전형인 간 돌칼(마제석검)과 돌화살촉 등도 나왔다. 학계는 대형 묘역을 갖춘 고인돌이 한반도 남부권에서 처음 확인된 사실을 주목한다. 청동기·철기시대 미개지역으로 인식되어온 남부에서도 일찍부터 원시국가의 기반이 되는 권력·사회계층 분화가 진행되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도 춘천 신북읍 천전리 도로공사터에서 기원전 10~11세기께의 돌널무덤(석관묘)16기를 비롯해 집터 75곳, 저장구덩이, 경작지터 등이 있는 청동기 전기 마을유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둘레에 도랑을 친 석관묘는 동북아권에서 가장 시기가 이르고,규모도 최대급이라고 한다. 또 불땐 시설 남은 집터들과 벼, 수수 따위를 반구모양으로 두둑하게 심은 흔적의 논·밭터, 동물을 빠뜨려 사냥하는 함정덫까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 생활공간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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