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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춤판으로 펼쳐진 ‘삶의 풍경’ 전 개막행사장 풍경(사진 위). 알록달록한 싸구려 전구로 만든 최정화씨의 조형물이 보이고 그 옆에서 관객들이 옛 석재 위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왼쪽 도판들은 최씨가 디자인한 태극기 무늬와 금빛을 입힌 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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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가구전 ‘삶의 풍경’ 괴짜가구 사이로 괴짜 예술가·젊은이들
춤추고 노래하며 “신나는게 예술이죠” “와! 오빠!” 지난 6일 저녁 서울 관훈동의 아트상품 백화점인 쌈지길 지하 2층 주차장에서는 난데없는 춤판이 한창 벌어졌다. 삭막한 블록벽 주차장은 금빛, 은빛, 태극기 무늬 등을 입힌 형형색색의 소파와 양철 밥상 더미, 모던한 금속테이블, 홀쭉한 책장으로 뒤덮였고, 그 사이사이 공간에서 젊은이들이 작가들과 어울려 괴성을 지르며 막춤을 춘다. 테크노, 록음악과 ‘뽕짝’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퍼진다. %%990002%%
키치미술가 최정화씨와 가구 디자이너 최미경, 나미 마키시가 공동기획한 인테리어 가구전 ‘삶의 풍경’(5월2일까지·02-521-3323)의 개막행사는 파천황적인 얼개로 지금 젊은 미술인들의 내면 풍경을 한껏 드러냈다. 작품 보며 점잔 떠는 건 금기다. 관객들은 칵테일 잔 들고 괴짜가구들을 흘깃 보면서 내키면 춤추고 노래하면 된다. 루이뷔통 가방 문양을 패러디한 소파, 조잡한 빛을 발하는 양철, 나무 밥상, 마치 막대같은 책 꽂이 등 출품가구들의 팝아트적인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손짓발짓하며 춤추던 작가 최정화씨가 말한다. “예술이 뭐 대수인가요. 우리들 삶을 신나게 재미있게 해주면 그만이지요.” 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또다른 괴짜가 나타났다. 최근 청담동 갤러리 드맹에서 개인전(5월4일까지·02-543-8485)을 시작한 젊은 섹시작가 낸시 랭이 케이블 방송의 카메라 팀을 이끌고 전시장에 들어왔다. 가슴과 엉덩이, 배꼽을 한껏 부각시킨 모던 룩 차림으로 최정화, 강영민씨 등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낱낱이 촬영되었다. 연예스타인지, 작가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 그는 요사이 패션 파티와 결합한 알몸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990003%%‘삶의 풍경’전이 보여준 또다른 풍경은 젊은 미술판의 트렌드로 등장한 ‘자본을 데리고 놀기’, 이른바 아트엔테테인먼트의 단면이다. 상업화랑에 연줄을 대거나, 미대 교수가 되는 것이 이 동네의 출세길이었던 도식을 팽개치고, 패션업체 혹은 거대기업체의 마케팅을 또다른 작업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국내에 허름한 키치미술을 본격화한 최정화씨는 그 원조로 꼽힌다. 조경, 인테리어, 파티 디자인 등에서 끼를 발휘하며 작업해온 지 10년이 넘었다. 팝아트 작가 강영민씨의 경우 단짝동료 낸시 랭과 15일 저녁 서울 강남 리츠칼튼 호텔에서 미국 자동차사 캐딜락의 새 모델 발표회를 디자인해 선보였다. 건담로봇 이미지와 여성, 동물 따위의 이미지가 ‘짬뽕’된 낸시 랭의 그림 연작 ‘타부요기니’를 휘장처럼 펼치고 그 아래로 노인기사가 모는 신차모델이 지나가는 퍼포먼스다. 도시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해온 참여미술인 모임 플라잉시티가 지난 2월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에르매스 매장의 쇼윈도를 디자인한 것도 논쟁적인 사건이었고, 뜨는 사진가 권오상씨는 여성복 브랜드 앤디앤뎁의 올해 컬렉션 발표장에서 꽃무늬 단추디자인을 선보였다. 패션, 디자인업체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공동작업 등을 제안하며 구애에 열중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제도권 귀족과 배고픈 젊은 작가들이 여전히 상존하는 미술판에서 비즈니스 아트는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작가 강영민씨는 “90년대 성공한 패션브랜드 쌈지의 경우에서 보이듯 자본 그 자체를 재미있는 놀거리 미디어로 이용한다는 것이지 자본의 전략에 분별없이 종속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말한다. 화랑, 미술관의 추천과 낙점에 기대려는 의지를 딱 접고, 연예산업처럼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상품화하는 비즈니스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어쨌든 젊은 작가들의 비즈니스 아트가 경직된 미술판에 대한 영리한 저항이자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으로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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