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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이 창립자이자 작곡가·연주가인 필립 브랠. <뉴욕 타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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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무대·오묘한 소리의 항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들은 대부분 즐겁다. 어른의 눈에는 유치해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일단 ‘웃긴’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눈을 쉽게 현혹하는 곡예와 서커스, 광대극, 짧고 분명한 이야기와 노래들에 열광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 공연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같은 이야기 구조가 확실히 짜인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적인’ 작품이라는 의미다. 어린이들은 음악의 장르나 리듬,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린이 극단들은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기획할 때 일단 기발하고 웃기고 재밌는 내용을 먼저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실제 관객인 어린이들이 집중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즐거움’ 그 자체에 집중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잠깐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망설임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공연이 바로 최근 어린이 전용 극장인 뉴 빅토리 극장에서 상연을 시작한 벨기에 극단 ‘판탈로네’ 의 <루나/펭귄>(Luna/Penguin) 이다. 이 공연은 한 마디로 ‘책 읽어주기’ 라고 할 수 있다. 단, 아주 특별한 책 읽기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이비스 프리맨은 미국 공연을 위해 특별히 캐스팅됐다.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초청을 받을 때마다 그 나라의 배우를 내레이터로 캐스팅해왔던 전례를 따른 것이다. 1막인 ‘루나’는 슬로바키아 전래 동화를 바탕으로 한 동화 <나무 요정 루나>를 들려준다. 2막 ‘펭귄’은 세 부분으로 나뉘며 첫 부분은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어둠과 음악소리, 두번째 부분은 스웨덴 작가 마리 튀른크비스트의 <사랑에 관한 조그만 이야기>, 세번째는 일본 작가 치하루 사카자키의 <내 마음은 펭귄>이다. 1999년에 결성된 ‘판탈로네’는 어린이 공연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아니다. 이 작품은 이 극단에서 가장 성공한 어린이용 공연이지만 이조차도 완전히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린이 공연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깜짝 놀랄 만한 아름다운 무대 연출과 프로젝션의 운용이 돋보인다. 이 작품을 위해 플립 브랠이 작곡한 동양과 서양이 오묘하게 섞인 현대음악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필립 브랠은 그 자신이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개의 타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다양한 효과음과 오묘한 소리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만약 모든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어린이들을 위한 ‘즐거움’에만 봉사한다고 하면 이 작품을 성공작이라고 보긴 쉽지 않다. 실제로 연령이 낮은 어린이들은 지겨움에 몸을 비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며 아름다운 삽화와 신비한 음악을 머리에 두고 두고 새겨두는 어린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교훈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아름답고 신비한 음악과 인생과 사랑과 나눔에 대한 직관적이고 은유적이며 단순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물 속에 놓인 단에 앉아 연주하고 이야기하며 보여주는 이 공연은 어린이에게는 ‘느낌’을, 어른에게는 인생을 한 박자 쉬어가는 템포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수진·조용신 공연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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