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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5 17:32 수정 : 2005.05.05 17:32



△ (사진설명) 종족은 평화와 공존의 희망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침략자인가,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통합적 공동체의 구성 요소인가. <종족과 민족>의 지은이들은 종족이라는 개념으로 동아시아 각국과 한국 사회 내부의 분화, 이질화 현상과 그 정치학을 분석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민족-탈민족 논쟁선상 ‘종족’ 이라는 프리즘

“원래는 ‘종족’만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말리더라고요. 너무 낯선 개념이라는 거죠. 결국 ‘민족’을 덧붙였습니다.” 〈종족과 민족〉(도서출판 아카넷)이란 책 제목이 탄생하게 된 사연이다. 김광억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 속에는 종족(ethnic group)이란 개념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일의 어려움이 녹아 있다. 단일민족국가의 정체성이 강해, ‘탈민족’의 문제 설정조차 낯선 한국에서 ‘종족’은 사문화된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김광억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를 둘러싼 찬반 논란만 있는데, 사실은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서 더 근본적인 차별과 ‘타자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종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인류학 전공 교수들이 쓴 〈종족과 민족〉은 그래서 한국과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개척하는 학술서다.

종족이라는 개념을 뜀틀 삼아 민족-탈민족, 주체-타자의 문제를 아우르는 동시에 넘어서려는 기획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원주민과 인도 출신 이주민의 갈등, 나이지리아의 종족 갈등, 인도 내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의 갈등 등 10여 나라의 종족 갈등 사례를 연구했다.

“같은 민족안 차별화·타자화” 새 시야 개척
피지섬 주민·일 닛케진 등 10여개국 연구
한국 영호남 지역갈등·중국동포 홀대
지배집단 욕망-소수자의 타협 규명


그 결과 민족의 범주로는 포착되지 않았던 갈등의 다양한 면모들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났다. 2차 대전 이후 단일 순수혈통의 ‘신화’를 구축한 일본의 ‘닛케진’이 대표적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남미 이민자 2세들인 닛케진은 일본 사회에서 천대받으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같은 혈통의 민족집단이 정치·경제·사회적인 이유로 어떻게 ‘타자화’되고 하위 종족집단으로 낙인찍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김 교수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종합정리한 ‘총론’에서 “(현대적 의미의) 종족은 인종과 민족의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맥락에 따라 (인종과 민족보다) 더 다양하게 쓰인다”고 설명한다. 인종이 주로 생물학적 차별에 주목한 개념이고, 민족이 근대국가의 국민 형성과 연결된 개념이라면, 종족은 “인종과 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른 사회적 집단을 다룰 때 사용되는” 개념으로 “동일 민족집단 안의 분화와 이질화, 그에 따른 차별과 타자화”를 살피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종족의 개념틀이 한국 사회에 ‘함의’를 던져주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 안에서도 지역이나 풍습, 종교적 배경에 따라 전혀 별개의 인간으로 간주하는 ‘준종족적 편견’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그것은 “압도적 지배집단이 소수적 집단에게 그들의 문화에 적극 적응하거나 동화하도록 요구하고, 소수집단은 자기의 종족성을 새로운 경쟁과 타협의 자원으로 개발하고 유지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말한다.

영호남 지역 갈등이나 국내 조선족 및 탈북인 차별 등은 종족적 이질화에 의한 ‘타자화’의 중요한 징후다.

〈종족과 민족〉 연구자들의 학문적 목표는 “소수자의 실존적 몸짓으로서의 종족성 추구의 절실함과 지배세력의 욕망에 의한 종족 발명의 허구성을 함께 규명”하는 것이다. 종족은 “평화와 공존의 희망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침략자”일 수도, “아니면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통합적 공동체의 구성 요소”일 수도 있다. ‘민족-탈민족 논쟁’이 놓치고 있는 현실의 다양한 국면을 ‘종족’의 개념틀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여기에 담겨 있다.

책은 “종족성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는 종족성의 정치에 대한 자성적 성찰뿐만 아니라, 거기서 비롯하는 대립과 차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대우학술총서의 하나로 발간됐지만, 구체적이고 풍부한 사례 연구 덕분에 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홍콩인 “열등한 타자, 대륙인”

같은 민족끼리도 ‘종족화’ 생생한 사례

〈종족과 민족〉이 다루고 있는 여러 사례 가운데 홍콩 문제는 특히 눈길을 끈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관련 연구에서, 홍콩인과 대륙인 사이의 갈등을 통해 어떻게 같은 민족 내부에서 ‘종족적 타자화’가 진행되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현재 홍콩인의 대다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중국 대륙으로부터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1980년대 말 이후 홍콩으로 건너온 중화인민공화국 출신 이주민들과 민족적·인종적·혈통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중국 출신 이주민들을 “자신과 대립되는 열등한 타자”로 부르는 말인 ‘대륙인’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현상은 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인과 대륙인이 동일한 국민국가의 공민이 된 다음에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19세기 이전부터 홍콩에 살았으며 혈통적으로 중국인과 다소 구분되는 토착민들은 아예 종족 갈등의 변수조차 되지 못했다.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 갈등은 80년대 이전에 홍콩에 자리잡은 한족과 그 이후 넘어온 한족 사이의 갈등이다.

그 배경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점유 경쟁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집단을 하나의 특별한 종족인 양 취급하면서 경제 영역에서 소외시키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국가와 민족집단 안에서도 정치적 이념과 체제, 그리고 경제적 기회와 자원을 둘러싼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종족 만들기의 폭력적 과정”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이런 사태가 발생한 근본원인으로 ‘집단망각’을 지적한다. 홍콩인들이 “민주주의가 거세된 식민 치하의 조건부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과거”를 잊고 “식민 흔적과 상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자성하고 되묻기보다는 대륙인을 배제하고 차별함으로써 홍콩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결과라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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