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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어느 배우보다도 인기만점인 자동차 치티치티에 타고 있는 팟츠 박사(라울 에스페라자)와 두 어린이. 사진 조안 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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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상·댄스 모든게 일품이나
‘구식 음악’ 에 김 빠지는 걸 어쩌랴 지난 4월28일, 브로드웨이에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가족뮤지컬이 개막했다. ‘007 시리즈’의 원작자로 너무나 유명한 이언 플레밍이 쓴 동화 <치티치티 뱅뱅>을 원작으로 하여 1968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것이다. 음악은 리차드와 로버트 셔만 형제가 작곡한 원작영화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했고 줄거리 역시 조금 간략해졌을 뿐 영화를 똑같이 따라가고 있다. 달라진 것은 비주얼이다. 1968년에 개봉한 영화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언 플레밍의 미래지향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면 오늘날 개막한 무대 버전은 거의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웅장한 새로운 시대를 보여준다. 분명히 시대 상황은 멀고 먼 과거지만 마치 다른 별의 일인양 초모던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은 역시 영국 디자이너인 안소니 워드의 매력. 그의 무대는 마치 독일 표현주의 영화나 챨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놀랄 만큼 선명한 색을 입힌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가 직접 디자인한 의상들에는 달콤함과 위험함이 동시에 드러난다. 뚜렷하게 대비되는 색깔과 화려한 프릴이 어린이를 유혹한다면 그 이면에 담긴 섹시함과 기괴함이 어른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이 정도 스케일의 웅장함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위키드>의 유진 리 정도다. 또한 <캣츠>의 안무가로 유명한 질리안 린의 컨템포러리 댄스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안무로 이루어진 군무 장면은 일품이다. 아버지인 캐락터커스 팟츠 역의 라울 에스페라자는 그 외의 다른 사람을 연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와 노래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하다 못해 두 아이들은 물론 폭군인 불가리아의 왕인 바로네스와 바론 역의 마크 커디쉬와 잰 맥스웰, 어린이들을 몽땅 잡아 가두는 어린이 사냥꾼 역의 케빈 캐훈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의 앙상블도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장점은 여기까지다. 영화에서 그대로 따온 음악들은 2005년 봄날에 듣기에는 어쩔 수 없이 구식이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무대와 의상 디자인, 브로드웨이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견고한 안무 등이 아무리 좋아도 이 작품의 음악만은 너무나도 어린이용이다. 게다가 군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군무의 뒤로 어정쩡하게 드라마를 진행시키는 부분도 분명한 단점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웨스트 앤드 뮤지컬이 처한 가장 큰 문제인 작가의 부재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음악만 빼면 이 작품은 나무랄 데가 없다. 이수진·조용신 공연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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