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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18:44 수정 : 2005.05.11 18:44



현실세계를 절대화할 때
미래는 두렵고 불안하며
초월세계를 절대화할 때
현실은 그림자로 전락한다
미시세계를 절대화할 때
현실은 껍데기에 그치고
가상세걔를 절대화할 때
우리는 기술자들과 자본가들이
만든 전자회로 속으로 빨려든다

살면서 ‘세계’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라는 말은 단 하나의 세상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한 세계(축구의 세계, 학문의 세계, 기업의 세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세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등을 비롯해 우리는 세계에 관련해 여러 가지 물음을 던지곤 한다.

바둑의 세계, 법의 세계… 등처럼 일정한 영역에 입각한 세계들이 아니라, ‘세계’라는 말 자체를 아예 다르게 이해하는 좀 더 근본적인 구분들이 있다.

첫 번째 세계는 현실 세계다. <세계>라는 잡지는 우리에게 나타나 있는 세계를 다룬다. 현 세계는 일상과 상식의 세계, 개별적 실체들과 물질적 바탕(유체들), 그리고 기계들, 도시, 작품들… 등을 비롯한 문화적 산물들로 구성되는 세계다. 이 세계는 인간의 지각 구조와 일상 언어를 통해 형성된다.

또 하나의 세계는 초월 세계다. 인간은 늘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왔다. 그런 세계는 현 세계를 ‘초월’하는 세계다. 그것은 지리멸렬한 현 세계 너머에서 더욱 참된 존재를 찾으려는 지적 호기심에서(원리, 이법), 또는 현 세계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실존적 문제를 풀기 위해서(삶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는 현 세계 안의 권력을 초월한 차원을 통해 정초하기 위해서(왕, 귀족과 신 사이의 혈연관계) 추구되었다.

전통 사회는 이 두 세계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서 전개되었다. 플라톤-기독교적 형상철학에서 ‘구현’이나 ‘임재(臨在)’ 같은 말들, 또 동북아에서 ‘천인합일(天人合一)’, ‘운명’ 같은 말들은 이런 맥락을 잘 나타낸다. 초월 세계는 근대에 이르러 의심받게 된다. 초월 세계에 대한 거부가 근대성을 특징짓는다.


근대성의 극한에서 우리는 미시 세계를 만나게 된다. ‘~자(子)’, ‘~소(素)’ 같은 말이 근대적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때로는 수학적 미립자(=무한소)가 사용되기도 한다(반대로 과학은, 예컨대 천문학이나 진화론에서 그런 것처럼 현 세계보다 거시적인 세계를 탐구한다). 이제 현실 세계는 미시 세계의 효과로 전락한다. 현실 세계는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반영일 뿐인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현실 세계와 초월 세계의 관계가 문제시되었다면, 근대 사회에서는 현실 세계와 미시 세계의 관계가 문제시된다. 천문학자들의 달과 피가로의 달, 미립자들로 된 책상과 딱딱한 책상, 광학적 무지개와 문학적 무지개… 사이의 이율배반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초월 세계든 미시 세계든 현실 세계와의 관계 아래에서 논의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신들은 인간들을 닮았다. 색을 정의해 주는 수학 공식에는 색이 없다.

현실-초월-가상 넘나들때 ‘다양한 나’ 가능
한 세계만 고착화하려는 권력에 저항해야

오늘날에 이르러 현실 세계, 초월 세계와도, 또 미시 세계와도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가상 세계라고 불리는 이 세계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다.

가상 세계는 컴퓨터의 발달이 전방위 정보교환 체계의 구축(인터넷)과 환각적 지각 상황의 창출(가상 현실)의 단계에 도달했을 때, 현실적인 무엇으로서 등장했다 ­초월 세계이든 미시 세계이든 가상 세계이든,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문제시될 때 현실적인 문제로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상 세계는 초월 세계와도 다르다. 이 세계는 비물질적 세계이지만 물질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비트’의 세계다. 가상 세계는 기술적 조작의 산물인 것이다. 인과를 초월하는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 안에서는 철저하게 물질적 인과에 종속된다. 가상 세계는 이성과 불연속적 자기동일자(自己同一者)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욕망과 이미지의 흐름이 존재하는 세계다. 초월 세계가 영원한 관조의 세계라면, 가상 세계는 순간적 현혹의 세계다.

또 가상 세계는 미시 세계와도 다르다. 미시 세계는 물질과 에네르기의 세계이지만, 가상 세계는 비트와 정보의 세계다. 미시 세계는 과학에 의해 발견되는 세계지만, 가상세계는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적 세계다. 그것은 모든 일이 가능한 세계다. 현실 세계의 기술이 실패하면 심각한 결과가 도래하지만, 가상 세계 안에서 기술이 실패하면 지워버리고 다시 깔면 그만이다. 가상 세계는 인과의 제약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허구적으로 충족시켜 준다.

가상세계의 ‘존재’에서 가장 역설적인 것은 그것이 탈물질적인 자유의 세계이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테크놀러지의 산물이고, 훨훨 날아다니는 꿈과 상상의 세계이면서도 철저하게 자본의 지배를 받는 상품의 세계이며, 또 국적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듯한 세계이면서도 철저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장 속에 영위된다는 점이다.

심상은 자유롭지만 현실성이 없고, 현실은 안정적이지만 갑갑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에 외화한 심상을 좋아한다. 깨어 있는 세계에는 의식의 훈계가 존재하고, 꿈이나 상상에 몰입할 때 대상에 대한 주목은 흐려진다. 현실 속에 외화한 가상세계를 대할 때 우리는 현실을 대하고 있지만 꿈속에 있는 것이다. 가상세계를 만드는 산업은 사람들을 꿈 속에 존재하게 만들려는 산업이다. 그래서 소설→영상→게임으로 가면서 현실 속의 꿈의 세계는 점차 강력해지고, 가상현실에서 완성된다. 가상 현실에서 현실의 주체와 가상의 주체는 완전히 분리된다. 가상 세계의 나는 그 세계가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 지각할까? 가상 세계의 나는, 현실 세계의 나의 죽음과도 같다.

어떤 세계든 그 세계에 ‘빠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산다는 것은 드나듦이다. 드나듦의 가장 근본적 형태는 세계들 사이에서의 드나듦이다. 드나듦은 주체의 변화를 가져온다. 드나듦이 원활치 못할 때 빠짐이 성립한다. 이 때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들 사이의 주체에게 균열이 찾아온다. 세계들을 가로지를 때 다양한 ‘나’가 가능하다. 주체는 세계들을 종합함으로써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세계들을 가로지르면서 산다는 것은 여러 언어 ­언어라는 말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로 사유함을 함축한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번역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한 세계의 언어를 다른 세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번역의 무능은 편집증 또는 분열증을 가져온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번역 능력이 필요하다.

가상 세계를 조작해내는 산업은 뇌와 컴퓨터를 잇는 ‘전뇌화(電腦化)’가 현실이 된다면 그 때 극에 달할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생체 역학, 미세 기계공학 등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전뇌화의 세계다. 이 때 심상과 외상은 일치하게 된다. 이럴 경우 한 인간의 내면이 외화하고 조작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고도로 조작되는 가상 세계도 결국 기계 장치들을 필요로 하고, 그 장치들이 놓여 있는 것은 현실세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현실 속의 어떤 인간들이다.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려면 심리 차원과 현실 차원, 논리 차원, 이미지 차원이 서로 번역 가능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이 알고리듬으로 번역되고, 그것이 이미지로 번역되고, 또 그 이미지가 현실적 사물로 번역되어야 한다. 문화란 복잡한 번역의 체계다.

컴퓨터 발명의 진정한 의미는 기계의 발명에 있다기보다 새로운 언어의 발명에 있다. 언어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접속이다. 접속이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곳에서 성립한다.

초월 세계, 미시 세계, 가상 세계도 결국 현실 속의 어떤 형태로 자리 잡을 때만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든 세계들은 현실 세계와의 관련 아래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 또 다른 어떤 세계가 도래한다면, 그 현실 세계에 편입됨으로써만 논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현실 세계는 다른 세계들에 의해 계속 변해간다.

다른 세계들에 빠질 때 현실 세계는 점자 황폐해진다. 새로운 세계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듯이 보이지만, 진정한 구원은 현실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절대화할 때 미래는 언제나 두렵고 불안한 것으로 다가온다. 초월 세계를 절대화할 때 현실은 그림자로 전락한다. 미세 세계를 절대화할 때 현실은 조작되어야 할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상 세계를 절대화할 때 우리는 기술자들과 자본가들이 만들어 놓은 전자회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알고리듬으로 화한다.

여러 세계를 산다는 것은 세계들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한 세계를 고착화하려는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에만 세계(세계 전체)는 좀더 밝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다가올 것이다. <끝>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soyow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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