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만부 스페인 최대 ‘기이한 고급지’
광고비중 낮고 문화상품 특판 톡톡
르몽드의 편집국장이던 에디 플레넬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라는 한탄으로 사직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엘파이스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영업 성적으로 볼 때 엘파이스는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좋은 신문의 하나다. 부수 46만에 시장 점유율 29.8%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수로 따지면 평일치 220만에 일요판 320만을 자랑한다. 고급지로 최대 부수를 유지하는 ‘기이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신문은 참혹한 내란을 거쳐 장기집권한 독재자 프랑코가 1975년 11월 숨지자 일기 시작한 민주화 갈망 속에서 76년 5월 첫호를 냈다. 새로운 신문을 만들려는 시도는 프랑코가 죽기 전부터 계획됐으나 그의 사후 반년 만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순탄치 않았던 스페인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매체다. 고메스는 엘파이스의 위상에 대해 ‘프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자리매김하면서 ‘스페인과 중남미의 준거신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세계에서 스페인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신문을 안다는 것이다. ‘나라’라는 뜻을 지닌 이 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면의 전면·집중 배치에 있다. 국제담당 부국장 베르나 아르부르는 1면 바로 다음인 2면부터 국제뉴스가 시작돼 상황에 따라 11면에서 15면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코 치하에서 외국 소식이 통제됐기 때문에 ‘모더니티의 신문’ ‘새 시대의 신문’이라는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창간 때부터 이런 지면 구성을 고수해 왔다고 했다. 독재 시대의 고립에서 벗어난 개방을 내세우니 국제뉴스를 다루는 인력층도 두텁다. 본사에서 직접 보내는 특파원이 12~15명, 스트링거 등 계약직 통신원이 30명에 이른다. 본사 국제부에도 20명이 일하며 출장을 자주 다닌다고 한다. 특파원의 지역별 배치를 보면 당연히 유럽이 우선이고 미국, 중남미, 북아프리카 차례로 이어진다. %%990003%%
엘파이스는 89년부터 중도좌파 성향의 유럽 신문들과 제휴관계를 맺어 왔다. 르몽드, 이탈리아의 <라레푸블리카>, 포르투갈의 <포플리코>,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이 그 대상이다. 영국의 <가디언>과는 공식 제휴는 없다고 한다. 2001년부터 스페인에서 발간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엘파이스 영어판 뉴스를 끼워서 팔고 있다. 아르부르는 신문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묻자 “유럽의 다른 언론들이 다 힘들어하고 있어 우리만의 특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전제하고 “형식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우 정제된 뉴스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 뉴스는 아무리 내용이 지루하더라도 우선 배치를 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중요 뉴스가 한자리에 모아져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다. 의견과 정보를 엄격히 분리하고 진지한 판단 기준을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편집국의 분위기는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편집국장은 신문사의 회장이 지명을 해 인준투표를 거친다고 한다. 한겨레는 이전에 편집국장을 기자들의 직선제로 뽑았고 지금은 인준투표를 해서 투표 참가자의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아르부르는 그런 제도가 잘 작동하느냐고 반문했다. 엘파이스는 일정급 이상의 편집국 부서장이면 모두 투표의 대상이 되는데 결과는 전혀 구속력이 없고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편집회의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를 대체하는 혁신적 시도는 없다고 했다. %%990004%% 신문의 수익 구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다른 것에 비해 광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문화상품 특판이라는 독특한 전략을 쓰고 있다. 광고 45%, 구독료 수입 34%에 문화상품 특판이 21%의 비율이다. 2004년도 수입과 세전이익이 전년 대비 32%, 51%의 증가율을 보여 수치상으로만 보면 성장기조가 발군이다. 문화상품 특판이라는 것은 문학작품, 백과사전, 음악시디, 영화디브이디 등의 상품을 신문 구매자에게 아주 이례적인 값으로 팔아 신문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고 신규독자 확보를 노리는 것이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 정책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내부의 평가도 나오고 있다. 노조 간부이자 자료부에 근무하는 플로르쿠시오 페베스 비야르는 특판을 하지 않으면 실판 부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고 “이미 경고등이 켜져 있지만 대비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효순 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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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공룡’ 프리사 신문 외 TV·라디오 네트워크…신뢰성에 중남미 판매권 탄탄 엘파이스는 스페인의 미디어그룹인 프리사 산하에 있다. 1972년에 출범한 프리사는 유럽과 남북미 대륙의 22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종업원 9천명에 작년도 그룹 수입총액이 14억2600만 유로에 이른다. 세전이익이 1억9천만 유로로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다. 각종 신문·잡지 외에 전국적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라디오방송은 중남미는 물론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스페인어 방송을 한다. 미국은 마이애미가 거점인데 히스패닉계를 상대로 한 사업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미국의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마르 아덴트로>(바다의 내면)는 프리사가 관여하는 영화제작사에서 만든 것이다. 프리사의 총수는 헤수스 데 폴랑코라는 사업가로 엘파이스의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프랑코 치하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진보와 다양성을 미디어에 복원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진보세력을 적극 밀어서 여론을 조작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프리사가 미디어 공룡으로 성장한 이유를 두고서는 설명이 엇갈린다. 엘파이스의 관계자들은 신문에서 돈을 많이 벌어 사업 다각화를 꾀한 것이 주효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중남미라는 스페인어권이 성장의 버팀목이 됐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프리사에서 ‘보석’으로 대접받는 산티야나라는 출판사는 60년대부터 교과서를 만들어 중남미 시장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고급 일간지 발행에 수반되는 신뢰성에다 대항해시대에 말뚝을 박은 옛 식민지를 거점으로 탄탄한 수익구조를 만든 셈이다. ■ 마케팅 이사 미겔 페레이라 젊은층·여성층 독자 흡수 숙제 %%990005%% 젊은층의 신문 이탈이나 여성층의 고급지 기피 현상은 어느 나라나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지표상으로는 가장 잘 나가는 신문의 하나인 엘파이스의 마케팅 이사 미겔 페레이라는 이런 문제의 해법을 놓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핵심독자는 누구인가? =43살의 남자로 중간층 이상이며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며 고품질의 콘텐츠를 요구하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부연하면 35살에서 50살 사이의 연령대로 마드리드에 25%, 바르셀로나를 합치면 2대 도시에 40%가 산다. ―판매구조가 독자들이 거리의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보는 방식으로 돼 있는데 구독횟수는? =평균 주당 3.3회다. 일주일 내내 사는 열성 독자가 있는 반면 1~2회에 그치는 독자도 있다.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방안은? =그들을 끌어들이려면 가장 먼저 할 것이 상품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한 상품으로 모든 사람에게 접근할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내용, 포맷, 뉴스 가공방식에 맞춰야 한다. 학생들에게 신문을 읽게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제도적 접근이 중요하다. ―여성 독자의 호응도는? =유감스럽게도 평일치는 6 대 4로 여성 비율이 낮다. 하지만 일요판에는 여성층에 호소력이 있는 콘텐츠 게재와 문화상품 특판으로 52 대 48로 거의 균형을 이뤘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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