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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서관 고유상 사장. 이 출판사는 개화기에 설립돼 각종 서적을 내어 신문화 전파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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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색’ ‘님의침묵’ 등
60여년간 201종 발행
업적 조명한 논문 나와 <해동명장전> <화성돈전> 등 위인전, <설중매> <추월색> 등 신소설을 발행하여 개화기 신문화 전파에 앞장선 출판사 회동서관의 전모를 밝히는 논문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종국 혜천대 교수(한국출판학회장)는 ‘개화기 출판활동의 한 징험-회동서관의 출판문화사적 의의를 중심으로’란 논문에서 관련자 회고담, <대한매일신문> <황성신문> 등 당시 신문광고 등을 조사하여 회동서관의 성쇠와 출판서적, 문화적 업적 등을 밝혀냈다. 회동서관은 1897년 고제홍에 의해 지금의 조흥은행 본점자리(서울시 남대문로 1가 14번지)에서 ‘고제홍서사’란 서적상으로 출발했다. 부친한테서 포목가게를 이어받은 고제홍이 서적상으로 업종을 바꾸어 학부에서 발행하는 각종 교과서를 위탁 판매하고 일반 출판물도 중개 판매한 것. 아들 고유상이 스물네살 때인 1907년에 사업을 승계하면서 이름을 회동서관으로 바꾸고 서적판매보다 출판업에 비중을 두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전기인 <화성돈전>(1908년)에 이어 <철세계>(1908년), 추월색(1912) 등을 잇따라 펴냈다. <화성돈전>은 무려 3천부를 팔았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부 서적은 불온사상, 과학소설이란 이유로 판금조처를 당했다. <자전석요>(1909년)는 공전의 베스트셀러. 종두법 창시자인 지석영을 필자로 끌어들여 근대적인 옥편을 출판해 10만부를 팔았다. 중국에서 인쇄해 들여온 이 책은 한 권에 80전. 총 매출액은 8만원, 쌀로 쳐 6280여가마(현재 시가 20억 상당)였다. 회동서관은 1918년 무렵 종로지점인 광익서관, 출판사 계문사를 차리는 등 출판그룹으로 성장하여 20년대 초에는 민족계 서점으로는 가장 큰 사세로 성장했다. 중국과의 교역, 아들 병교의 중국유학 등으로 독립운동의 비밀루트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3·1운동 이후 일본서적이 쏟아져 들어오고 유학파가 출판업에 진출하면서 여느 민족계 서점과 출판사처럼 타격을 받았다. 1926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재생>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한 채 판권만 유지하다가 50년대 중반 최종 정리됐다. 이 교수가 조사·확인한 바로는 회동서관에서는 60여년 동안 201종의 주요도서를 발행했다. 시·가사·소설 등 문학이 91종 45%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실용·상식·풍속·참고서(20종), 동양고전(14종), 교과서류(14종), 경제·산업·기술(13종), 음악미술서예(12종), 의약(11종) 어학(11종) 순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회동서관은 △‘해동’과 통하는 ‘회동’을 상호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결과를 낳았고 △근대의 첫 옥편인 <자전석요>, 각종 신소설, 첫 장편소설 <무정> 등을 내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처음으로 인세를 지불하고 새 필자 및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등 출판분야로서도 큰 일을 이루었다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그럼에도 책 목록조차 변변하게 조사된 게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의 논문은 22일 관련 자료와 함께 영월 책박물관에서 정식 발표된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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