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8 16:18
수정 : 2005.05.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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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청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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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그 이름만으로도…
단원 김홍도(1745~?)를 우리 회화사상 가장 탁월한 화가로 꼽는 것은 18세기까지 그림 장인들이 이룩한 모든 회화적 성과를 자기 화풍 속에 갈무리한 천재성에서 비롯된다. 우리 땅의 힘찬 기세를 포착한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와 관아재 조영석이 기틀을 놓은 풍속도, 현재 심사정이 토착화시킨 문인화적 전통을 한 됫박에 녹인 것이 단원의 그림이며 이로부터 조선 회화만의 독창적 특징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15일부터 봄 기획전 ‘단원’을 시작했다. 전통 회화의 모든 장르에 통달했던 김홍도의 천재적 역량을 다기한 작품들로 새삼 느끼게 하는 화제전이다. 최고의 단원 컬렉션 답게 미술관쪽은 산수, 화조, 도석인물, 불교, 풍속화 등 세부 장르를 거의 망라한 역대 최대규모의 소장품 120여 점을 내놓았다. 학계는 단원의 사망 연도를 1806년으로 추정하고 있어 200주기 전의 성격도 지니는 셈이다.
출품작들은 풍속화 대가로만 알려진 단원의 면모가 빙산의 일부분임을 일깨워준다. 정밀한 세부 묘사와 가지 쳐내린 듯한 특유의 산세 준법이 보이는 금강산 6폭 병풍, 선비적 이상향을 그린 ‘무이구곡도’ 등에서 관찰·상상력을 겸비한 전문 화가의 자질이 드러난다. 봄날 당나귀 타고 가는 선비가 버들 위 뛰노는 꾀꼬리를 홀린 듯 쳐다보는 50대 작 <마상청앵>은 풍속화와 문인화가 가장 높은 격조로 어우러진 수작. 우수에 찬 선비의 표정과 간결한 붓질로 친 버드나무의 모습이 여백 아래 대조되면서 버들의 문기와 세속적 시선은 절묘하게 만난다.
2층에 소품으로 나뉘어 전시된 ‘단원일품화첩’의 산수, 화초, 인물도들은 중인 출신의 한계를 넘어 선비로 인정받고 싶어한 단원의 인간적 욕망이 묻어있다. 특히 중국 원대 문인화가 예찬이 그린 소슬한 나무, 정자 그림을 본떠 그린 <소림야수> <한산설정> 등은 사실상 첫 공개되는 문인화들이다. 문기를 얼핏 내세웠으나 나무와 정자 등의 현란한 윤곽선과 언덕, 땅의 자잘한 표정 등에서 장인화가의 재기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파초 잎 위에서 생황 부는 남자를 그린 <월하취생도>, 현감 재직 때 사냥 장면을 그렸다는 <호귀응렵도> 등은 자화상격이다. 풍류의 대가였지만 주위의 질시에 항시 고적했던 그의 내면이 잡힌다. 연꽃그림 등의 화조도와 <습득도> <남해관음> 등의 말년 불화에서 드러나는 서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묘사, 시각적 초점을 철저히 계산한 화면 운영의 묘미도 즐겁다. 형상이 번다하지 않고, 물이 흠뻑 묻은 중묵, 약간 곁들인 담묵, 갈필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걸작들을 보고 나오면 정원의 토종 풀꽃 내음이 후식처럼 기다린다. 29일까지. (02)762-044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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