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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8 16:23 수정 : 2005.05.18 16:23



(18) 필운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꽃 구경하며 놀기에 좋다. 요즘 서울에서는 꽃 놀이의 명소로 벚꽃 만발한 고궁이나 여의도 윤중제를 친다. 그렇다면 200~300년 전 조선시대 한양성 사람들이 즐겨 갔던 봄 놀이 명소는 어디였을까. 조선 후기 지리 문헌기록에는 서울 인왕산 남쪽 기슭의 필운대라는 곳이 단연 명소로 등장한다.

오늘날 종로구 필운동 9번지 배화여고 뒤쪽 구석에 암벽이 남아 있는 이 필운대는 한양성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었다. <동국세시기>나 <한경지략> 등의 문헌을 보면 필운대 암벽 아래 민가마다 꽃을 심어 인왕산의 기개 어린 풍모와 조화를 이루었으니 봄이면 술 들고 시를 짓는 선비와 가객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중종 때 대제학을 지낸 양곡 소세양이 전각을 지어 풍류를 즐긴 이래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 그의 사위인 명재상 이항복이 집터를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필운대라는 글씨가 지금도 암벽은 남아 있는데, 필운은 이항복의 호로 그가 직접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유명한 가객 박효관이 숱한 가객들과 교류하며 저 유명한 가곡집 <가곡원류>를 지었던 창작의 산실 운애산방도 바로 이곳에 있었다. 수백년 동안 필운대에서 술과 화전을 든 풍류객들이 무수히 꽃구경을 하고, 흥에 겨워 한시와 가곡을 지었으니 필운대 풍류라는 고유명사가 생겨났다. <가곡원류>에 실린 가곡 하나가 그 정취를 한 폭 그림처럼 짐작하게 한다.

‘복숭아꽃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온다/ 안개비 흩뿌리고 꾀꼬리가 우는구나/ 서로 술잔 권할 제 때마침 단장한 미인이 술병 들고 오는구나’

붉은 꽃잎 흩날리고 녹음이 퍼지는 초여름, 운애 박효관과 후학인 주옹이 산방에서 필운대 바라보며 술잔을 주고받는 정취를 묘사한 시다. 작가는 아련한 안개비 정경 속에 옆에는 기녀가 시중까지 드는 흥취에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인왕산과 북악산 기슭 청운동, 옥인동에 모여 살며 18세기 진경 문화의 중흥기를 일궈냈던 안동 김씨 일가 등의 노론 선비들도 필운대와 관련해 다양한 풍류기록을 남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그림 <필운대>와 <필운대 상화(꽃 감상)>이다. <필운대>는 소나무 언덕 아래 짙은 먹 바림으로 자유롭게 그려낸 필운대 터의 자연스러운 정취가 압권이다. <필운대 상화>는 선비들이 필운대 언덕에 앉아 아래 펼쳐진 한양성 장안의 꽃핀 봄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인데, 장안 민가는 세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주위를 둘러싼 남산, 관악산은 굵직한 먹점과 바림으로 처리해 우아한 정취를 살렸다. 이들 모두가 정선이 친구 사천 이병연과 십탄 이우신 등과 함께 꽃놀이를 즐기면서 즉석에서 그린 것이다. 그림 그리고 시 짓는 정경을 십탄은 생생한 풍경시로 남기고 있다. ‘꽃 보러 짝지어 서로 따르니/작은 찬합 막거리는 내가 챙겼네/한번 취해 미친 듯 노래하니 가슴이 후련하다/빈 바위 나눠 앉아 각기 시를 짓는다’

국문학계에서는 이 필운대 풍류의 절정으로 흔히 1880년 9월 노년의 박효관이 자신의 운애산방에서 벌인 단애대회라는 이름의 열린 풍류 모임을 꼽는다. 산방에서 단풍과 국화를 구경하며 흥취를 키우기 위해 김윤석, 신응선, 임백문, 천흥손, 손만길 등 당대의 가무, 악기연주에 능한 최고 예인들을 초청해 큰 풍류마당을 벌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배화여고 뒤쪽 쓰레기 소각장 옆에 있는 지금의 초라한 필운대에서 불과 100여 년 전까지의 풍류를 찾을 길은 영원히 막혀 버렸다. 20세기 초 이곳에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배화학당이 들어서고 이후 아래쪽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시야의 한양성 전경은 사라졌다. 암벽은 균열이 심해져 곳곳이 흉하게 시멘트 땜질되어 있고, 들머리에는 붕괴 위험이 있으니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서 있다. 필운대 새김글씨 옆에 이항복의 19세기 후손인 이유원은 조상을 기려 ‘할아버지 옛날 살던 집에 후손이 찾아 왔는데, 푸른 돌벽에 흰 구름 깊이 잠겼도다…’라고 예서의 새김글을 남겨 놓았지만, 주위가 온통 콘크리트로 발라진 지금 필운대에서는 흰 구름은 커녕 쓰레기장의 악취만이 맴돌 뿐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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