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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무대 뒤, 또는 무대 바깥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연주 곡목 맞춰 나비넥타이 매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자주 찾는 클래식 마니아라면 로비나 객석에서 은백의 노신사 한분을 만나볼 수 있다. 보타이(나비넥타이)를 맨 단정한 정장차림에 목에는 ‘안내’라는 팻말을 걸고 자상한 웃음을 띠고 있는 이 사람, 노인환(70)씨. 예술의전당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는 ‘노 회장’으로 알려진 자원봉사자이다. 그는 예술의전당이 지난 98년 2월 개관 10주년을 맞아 콘서트홀에 도입한 ‘명사 도우미’ 제도에 참가해 올해로 7년째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콘서트홀이 다섯달간 재개관 공사에 들어가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그를 지난 13일 저녁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로비에서 만났다. “자원봉사를 한 지 올해로 7년째 들어갑니다. 예전에는 몇분들과 함께 했는데 4~5년 전부터는 혼자서 하고 있어요. 간혹 외롭거나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든 일은 있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남을 돕고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니 오히려 즐겁지요. 10년은 채우고 그만두고 싶습니다.” 부인 사별 충격 자원 봉사로 극복 7년째 관객 안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자원봉사는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58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한 그는 60년 초 대만 무역상사에서 근무하다 62년 귀국한 뒤 봉제수출업체를 경영해왔으나 97년 고임금 등에 따른 경영난으로 회사를 정리해야만 했다. 은퇴 후 32평 아파트 한 채와 담낭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갑 나이의 부인 뿐이었던 그에게 그해 10월 부인마저 곁을 떠나자 심한 좌절에 빠져버렸다. 그런 그에게 예술의전당의 자원봉사 활동은 새로운 삶의 보람이었다. “사업차 때문에도 그렇고, 특히 이달 25일 뉴욕시립대학에서 음악연주학 박사 학위를 받는 둘째 희재가 12살부터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원과 줄리어드음악원 등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어서 미국을 방문할 일이 많았어요. 콘서트홀을 가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자원봉사자들이 즐겁게 관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너무 부러워서 언젠가 나도 해봐야지 생각해왔지요.” 당시 예술의전당 ‘명사 도우미’에는 이수성 전 총리부인 김경순씨와 이홍구 전 총리부인 박한옥씨를 비롯해 권영해 안기부장 부인 김효순씨 등 쟁쟁한 사회 저명인사 30여명이 참가했으나 ‘보통사람’으로는 그가 유일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음악시사저널>지에 오랫동안 음악시사 평론을 써왔고, 영어와 일어,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이 예술의전당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귀띰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그는 4시쯤 세안과 면도를 한 뒤 연주회의 성격과 연주곡목, 계절 등에 맞게 와이셔츠와 양복, 보타이, 행커치프를 고른 뒤 가볍게 향수로 마무리한다. 공연 시작 1시간 전쯤에 콘서트홀에 도착해서 로비와 객석에서 관객들을 안내하거나 공연장 에티켓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또 30여년간의 무역업에서 익힌 유창한 영어와 일어, 중국어 실력 때문에 외국인 안내까지 도맡는다. 그는 음악당 자원봉사 활동 이외도 몇해 전부터 콘서트홀에서 얼굴을 익힌 연주자들과 함께 성남에 있는 양친회사회복지재단 산하 소망재활원에서 중증환자를 위해 연주회도 벌이고 있다. 예술의전당 홍보마케팅팀 이상미 대리는 “한결같은 멋쟁이시다. 객석 도우미들이 주로 대학생인데 몇몇 관객들이 어리다고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지만 노 선생님이 가시면 바로 해결된다. 칠년 세월 동안 사회에 봉사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젊은 사람으로써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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