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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4 20:05 수정 : 2005.05.24 20:05



② 은구기 와 시옹오 VS 이석호 - 세계화와 탈식민문학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차 한국을 찾은 케냐 출신 소설가 은구기 와 시옹오를 아프리카문학 연구자인 이석호 (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 공동대표가 만났다. 〈한겨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통신원이기도 한 이 대표는 한국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남아공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은구기에 관한 논문으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은구기의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 치누아 아체베의 〈제3세계 문학과 식민주의 비평〉 등을 번역했다. 은구기는 이번의 첫 방한에서 70년대 이후 교분을 쌓아 왔으나 만난 적은 없는 김지하 시인을 만나고 싶어했으나, 김 시인이 해외 여행 중이라는 소식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부국-빈국·부자-빈국 ‘두개의 간극’ 메우기가 평화적 글쓰기

이석호=남아공의 케이프타운대학교에서 뵌 후 정확히 2년 만이군요. 당시 스티브 비코 재단 초청으로 남아공에 오셔서 ‘인권 및 민주주의’와 관련한 주제로 강연을 하신 걸로 기억이 납니다만. 넓은 의미에서 이번 ‘평화를 위한 글쓰기’ 포럼이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이는군요. 동시대 지구촌을 위협하는 것으로 “두 개의 간극”을 말씀하셨는데요.

은구기=“두 개의 간극”이란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계급,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비롯해 전 지구적으로 존재하는 부국과 빈국 간의 간극을 말합니다. 역사 이래로 이렇게 놀라운 생산력을 가진 시대가 없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시대는 “두 개의 간극”의 폭을 더욱 넓혀 놓았습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지구촌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것도 결국 이 간극을 메우는 데 복무해야 합니다.




이석호=한국과 꽤 깊은 인연을 가지고 계신데요. 얼추 70년대 초부터인가요? 〈작가와 정치〉라는 책에 보면 당시 아프리카 작가로는 선구적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장장 두 장(章)을 할애해 펼쳐놓고 계시지요. 거기서 김지하 시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시는데요. 김지하 시인과의 인연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주시지요.

은구기=197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김지하 시인이 쓴 〈민중의 함성〉이라는 영문판 시집을 읽게 되었지요. 그 뒤 그의 시에 매료되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다가 마침내 〈오적〉과 〈비어〉를 만나게 되지요. 저는 이후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나이로비대학 문학부에 소개를 하게 됩니다. 〈비어〉는 케냐 판 연극으로 둔갑해 공연이 되기도 하지요. 듣기로 김지하 시인은 〈오적〉과 〈비어〉를 출판한 후 감옥에 갔다더군요.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야, 책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투옥하는 나라도 있구나! 그런데 결국 얼마 뒤 저 역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이러니였지요. 투옥 후 〈오적〉과 〈비어〉를 케냐의 문맥으로 옮긴 〈십자가 위의 악마〉라는 책을 구상하게 됩니다.

이석호=1981년에 나온 〈십자가 위의 악마〉라는 책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이 책이 선생께서 다시는 영어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처음으로 선생의 모국어인 기쿠유어로 쓴 책이고, 둘째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과 〈비어〉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첫 번째 점과 관련해 말씀을 드리자면 차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작가들에게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영어 쓰지 않기 운동’은 선언적 차원에서는 대단히 유의미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실제로 선생 자신도 선언과 실천 사이에서 다소 갈팡질팡하는 인상을 주고 계신데요. 어떻습니까?

은구기=그렇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모국어로 글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결단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 제국주의적 문학관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주도한 ‘영어 쓰지 않기 운동’은 한편으로는 영어를 둘러싼 권위에 대한 도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의 경험을 세계관의 중심에 놓자는 운동입니다.



‘십자가 위의 악마’ 는 케냐판 오적인가?-이은-신식민지적 내용·구술문학 형식 따왔다

이석호=이번에는 〈십자가 위의 악마〉와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과 〈비어〉의 관계에 대해 좀더 비판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보죠. 다소 심하게 말하면 〈오적〉과 〈비어〉라는 담시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당시 한국의 정황을 독립 이후 케냐의 문맥으로 바꿔 소설의 형식으로 확장해놓은 것이 〈십자가 위의 악마〉가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형식과 내용 면에서 거의 동일함을 느낍니다.

은구기=김지하 시인의 담시집을 읽고 제가 받은 충격은 사실 한국의 구술문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층 민중들의 언어로 그렇게 실감나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프리카 역시 이 구술문학의 전통이 매우 유구합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렇고요. 내용적으로도 당시 한국의 신식민지적 상황과 케냐의 탈식민주의의 탈을 쓴 신식민지적 상황이 많이 유사했습니다.

이석호=이즈음 선생의 책 제목마냥 아프리카 작가들의 ‘귀향’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월 소잉카 선생도 얼마 전 나이지리아로 ‘귀향’을 하셨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선생께서도 약 사반세기에 이르는 ‘망향의 세월’을 접고 곧 ‘귀향’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사실입니까?

은구기=아프리카 출신의 망명 작가들에게 ‘귀향’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자진해서 망명을 한 작가이건,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이건 그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저는 ‘망명’을 강제당한 경우인데, 그 경우 ‘귀향’의 조건이 정치적인 것과 연루가 됩니다. 기실 저는 지난해 제 아내와 ‘귀향’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실패로 끝났지요. 그 이유는 전 독재자 모이 정권의 끄나풀들이 제가 투숙한 호텔 주변에서 테러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석호=아프리카 작가들의 ‘귀향’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이 이즈음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눈에 띄는 변화인데요. ‘아프리카 합중국’ 및 지역 연합의 건설과 관련한 논의랄지 범아프리카 의회의 구성 및 아프리카의 르네상스 등을 둘러싼 담론이 식자층 사이에서 매우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작가로서 21세기 아프리카의 과제는 무엇인지 끝으로 지적해주시지요.

모국어 소설, 제국주의 저항이자 아프리카 경험을 중심에 놓자는 것

은구기=비교적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이 ‘합중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위에서부터 밑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기층 민중들을 중심으로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21세기의 아프리카는 유럽과 미국보다는 아시아와의 교류 및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운명입니다.

정리 이석호 (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 공동대표 chaka82@hanmail.net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케냐 소설가 한국과 깊은 인연

은구기 와 시옹오는 1938년 케냐의 리무루 지방 카마리수에서 기쿠유 부족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9년 우간다의 캄팔라 대학에서 영문학을 수학했으며, 이때부터 소설가의 꿈을 키운다. 〈울지 말아라 아이야〉(1964)와 〈샛강〉(1965)을 시작으로 〈밀알〉(1967)과 〈피의 꽃잎〉(1977) 등 약 20여 권에 이르는 작품집과 에세이집을 발표한다. 1977년 영어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자신의 모국어인 기쿠유어로 발표한 최초의 소설인 〈십자가 위의 악마〉(1981)는 김지하 시인의 담시집인 〈오적〉과 〈비어〉의 영향을 깊게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작가로는 유별나게 한국과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투쟁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작가와 정치〉(1981)에 잘 나타나 있다.



글 싣는 순서

⑴ 이냐시오 라모네(프랑스 논객) vs 홍세화 - 신자유주의에 맞서
⑶ 하스미 시게히코(전 도쿄대 총장) vs 도정일 - 동북아 민족주의의 이상기류
⑷ 베이다오(중국 시인) vs 백원담 - 중국 개혁, 개방 이전과 이후
⑸ 루이스 세풀베다(칠레 출신 소설가) vs 송병선 -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
⑹ 가라타니 고진(일본 문학평론가) vs 박유하 -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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