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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5 16:56 수정 : 2005.05.25 16:56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익게천국, 폐인천하

“보아 환상의 허리라인”

“간만에 볼만한 야동 발견”

“연예인들이 주로 가는 나이트 어디요?”

인터넷 연예 게시판이 아니다. 각 대학 커뮤니티들의 ‘익게(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제목들이다. 대학생들이 고루한 자게(자유게시판)를 버리고 익게를 선택했다. 서울대 ‘스누라이프’, 성균관대 ‘성대사랑’, 이화여대 ‘이화이언’, 한국외대 ‘스라이프’, 등 학교를 대표하는 커뮤니티들은 닉네임을 사용하거나 아예 닉네임조차 가린다. 익명에 얼굴을 숨기자 대학생들, 목구멍이 터졌다. 정적이 감도는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달리 익게에는 하루 수백개 글이 올라온다. ‘배고프오’부터 ‘오늘 그녀와 헤어졌소’까지 내용은 다양하다. 찐한 성담론도 있고 연예인 사진을 ‘쎄우며’ 눈요기도 한다. 그만큼 가벼움이 보장된 장소다. 학내 가십들도 이 곳에서 일파만파 퍼진다.

폐인은 ‘디씨인사이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성대사랑에는 ‘자게폐인’이, 이화이언에는 ‘이화이언죽순이’가 있으며, 스누라이프에는 ‘공사게(공개사랑고백게시판)인’이 있다. 디씨폐인을 능가하는 애정과 열정으로 익게에 기거(?)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공사게인’을 자처하는 서울대 김씨(전기공학 4년)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감췄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 좋고 소극적인 유저들도 글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낀다”며 익명 게시판을 옹호했다.

훌리건·꽈배기는 가라!

그러나 목구멍이 터졌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낭패다.


‘의대=절대 지존, 사회계열=하위권 지방대 의대, 인문계열=지방대 수의대…’. 한 네티즌이 연세대 비공식 커뮤니티 ‘연세정보공유(연정공)’에 올린 글이다. 치졸하기 그지없는 이 공식에 흥분한 과 학생들의 리플이 폭주했다. 이 곳 뿐만이 아니다. ‘A대보다 B대가 낫다’, ‘C대는 실속 없어 지방대 수준이다’ 등 과 대항으로, 학교 대항으로 게시판들 곳곳에서 쇳소리가 난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버를 다운시키고 비방글로 도배하는 ‘훌리건’과 무조건 남의 말을 비꼬며 토론을 방해하는 ‘꽈배기’도 극성이다. 이화이언은 이대 총학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지지 선언’ 기자회견을 한 뒤 훌리건들에게 습격당한 바 있다. 이화이언 운영자 최은경씨는 “비밀단어를 만들어 훌리건·꽈배기를 막아보려 하지만 비밀단어 유출 가능성이 있어 늘 불안한 상태”라고 전했다. 스누라이프도 글 올린 후 24시간 안에 닉네임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운영자 유광열(컴퓨터공학 4년)씨는 “익명게시판 때문에 오는 학생들이 많아 실명제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운영상의 난점을 털어놓았다.

“나 외롭소”

그런데도 학생들이 익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흥적인 글들일지 몰라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말할 공간에 여기 밖에 없다”는 성대 홍다혜(경영학 3년)씨의 말처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의외로 ‘위안’이다. 얼마 전 한 대학 커뮤니티에 ‘나 외롭소’란 뜬금없는 글이 올라왔다. 서로의 과를 비난하던 꽈배기들까지 ‘나도 외롭다’, ‘소개팅을 해봐라’ 등 수십 개의 리플을 달았다. 익게의 가벼움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 진실이라면 표현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성적 농담이나 연예인 얘기도 그렇다. 그것들이 오간 뒤 더 깊은 외로움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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