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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5 18:18 수정 : 2005.05.25 18:18



다채널 환경 튀어야 산다?
시청률 경쟁 살아남기위한
해설가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엄숙주의’ 털고 ‘재미’ 더해
‘개그형’ 해설가로 변이까지
근데 ‘전문성’ 사라진건 아닌지…

1977년 경기는 대개 이렇게 시작했고 주인공은 캐스터였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멀리 바다 건너 국위를 선양하며 고군분투하시는 우리 해외동포 여러분 ….” 권투선수 홍수환과 헥트르 카라스키야의 더불유비에이(WBA) 주니어 세계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이다.

- 원종세 아나운서 : 그래도 조심해야겠죠? 카라스키야는 하드 펀처가 아닙니까?

- 해설가 : 네, 그렇습니다. (2라운드까지 4차례 다운을 당했는데 3라운드 전세가 역전됐다.)

- 원 아나운서 : 아! 네, 몰아 부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는데 우리의 홍수환 선수, 카라스키야한테 주먹을 작렬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장합니다.

- 해설가 : 아, 네, 대단합니다.

2003년 : 엠비시 이에스피엔(ESPN)에서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명투수 출신 차명석 해설가 사이에 오간 말은 이렇다.


- 캐스터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중계는 계속됩니다. 차 해설위원님, 기억나는 올스타전 추억이 있습니까?

- 차 위원 : 네, 저는 올스타전 추억이 아주 많습니다. 올스타로 뽑힌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 기간 중엔 늘 가족들이랑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 캐스터 : …….(캐스터의 ‘……’는 이렇게 옮기는 게 더 정확하고 입체적일 터다. --;;)

2004년 : 게임방송이다. 듀얼 토너먼트, 심성수와 장진남의 노스탤지어 경기 후반. 심 선수가 불리한 가운데, 상대방 입구에 지은 벙커 속의 마린을 두고서 설명한다.

- 캐스터 김창선 : 벙커 속 마린들은 차라리 여기가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겠죠?

- 해설가 엄재경 : 떨고 있겠죠…. 뭐~ 4명이니까 한 명은 광 팔고 그러면 되겠죠~.

‘해설’이 급변하고 있다. 기존의 점잖은 신뢰기반형 해설가의 모습이 재기발랄하고 엽기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개그형 해설가로 변이되고 있다.

이런 해설의 천면만화는 해설의 폭증과 맞물려 있다. 2005년 5월 현재, 케이블에는 엠비시 게임, 퀴니 등 게임채널이 8개, 스포츠중계 채널은 9개, 홈쇼핑 채널만도 5개다. 방송프로그램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안에 수많은 ‘해설자’가 유영하고 있다.

쇼(핑)호스트에 주로 의존했던 홈쇼핑 채널에까지 상품을 지지하는 ‘해설가’를 불러 앉힌 건 당연한 수순이다. 현대홈쇼핑의 구한승 방송제작팀 차장은 “초반엔 업체 관계자들이 나와 단순 상품정보를 주는 데 그쳤다가 점차 신뢰와 즐거움을 함께 줄 수 있는 전문가를 다각적으로 찾아 출연시킨다”고 설명한다. 하루에 소개되는 상품이 20종이 넘으니 변종 해설가도 20명이 넘는 셈이다.

해설 폭증은 방송 환경의 변화와 연동된다. 1995년 등장한 케이블이 부침을 거듭하다 99년 영화 <쉬리>의 성공과 함께 영상 산업이 폭발했다. 시청자층이 큰 폭으로 넓어졌고 2002년 전파를 탄 위성텔레비전으로 채널 수는 급증했다. 콘텐츠와 방송인 모두 달렸고 시청률 경쟁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 방송문화연구팀의 김호석 연구원은 “다채널 환경에서 해설가에게까지 ‘연예인의 끼’를 요구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특히 한국은 시청자의 요구로 사회자나 해설가까지 바뀌는 마당에 이런 흐름은 더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한 것도 많다. 여성 해설가는 손에 꼽힌다. 고정관념은 그대로다. 인지심리도 그대로다. 해설가는 한결같이 오른편에 있다. ‘좌’를 보조하는 ‘우’는 안정감, 믿음 등의 감정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 남녀 뉴스앵커가 자리를 바꾼다면 시청자는 불편해진다.

외려 엉뚱한 걸 변화시켰다. 지나친 ‘엄숙주의’를 털고 해학의 탈까지 쓴 해설이 넘치면서 해설의 기본적 권위마저 함께 털리고 있다. 하버마스의 말마따나 “아기를 씻긴 더러운 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함께 버리는” 꼴이다. 해설가를 들어앉힐 뿐,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해설을 걸맞게 창출 못하고 있는 것.

요즘 방송에서 해설가가 ‘제값’하는 채널은 점점 더 드물다. 모두 맞장구치거나 캐스터의 말을 복창하는 수준이다. 지난 20일 밤, 한 이종격투기 방송에선 해설가가 서로 엉겨붙어있는 선수들을 두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세를 왜 저렇게 오래 할까요”라며 진한 농을 걸기도 한다. 방송위원회는 지난달 25일 게임방송(2, 3월치)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비속성을 꼬집었다. 엠비시 게임, 온게임넷은 “떼로 잡을 수 있거든요”(한꺼번에 얻을 수 있거든요)이라던가 “잘 박아요”(잘 부딪치네요), “질레트를 먹을 때”(질레트전에서 승리할 때) 등 어감이 좋지 않은 표현으로 지적을 당했다. 게임티브이 역시 “덮치는 조건”(공격할 수 있는 조건), “무진장 먹어놓았죠”(많이 확보했죠) 등 문제가 되는 표현을 썼다. 부적절한 외국어, 어법을 어긴 표현도 넘친다.

그럼에도 분명 해설은 날씬해졌다. 탈권위적이고 자유분방한 21세기 시청자들은 그들의 어록까지 돌려보며 지지한다. 윤태진 교수(연세대 영상대학원)는 “인터넷을 떠도는 오타쿠 수준의 해설가들까지 넘쳐나면서 개인의 명성이나 권위에 의존했던 기존의 해설 양식이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새롭고 다양한 해설이 갖는 순기능이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비전문성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고 층이 훨씬 두꺼워진 매니아 시청자들에 의해 그런 해설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설(解說)인가 해설(諧說)인가 해설(害說)인가. 정체가 불명확한 곳곳의 해설이 24시간 시청자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이상 <한겨레> 해설가 임인택 기자였음. 오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메이저리그 바람타고 세대교체

해설가 변천과 유형별 특징

▲ (위로부터) 2002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레슬링경기를 해설중인 심권호씨(에스비에스), 신세대 이종격투기 해설가 김대환씨(사진 오른쪽) 사진 디에스이 제공, 스타크래프트리그를 해설중인 김도형씨(맨 왼쪽)와 엄재경씨(맨 오른쪽)
 



해설가의 양태가 급격히 변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다.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중계방송된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다. 기존의 해설가들은 때맞춰 메이저리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틈을 타고 메이저리그 매니아였던 신진 해설가들이 진출해 새 기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97년 한국방송에서 처음 메이저리그를 중계했지만 경인방송과 문화방송이 독점 중계를 이어나가면서 비로소 신진의 이름이 회자되었다. 야구의 외곽에 있었던 송재우, 이종률 등 30대 해설가들의 인기가 폭발했다. 지루하고 근엄한 ‘해설’이 재치있는 입담, 살가운 말투로 시청자들 ‘귀높이’에 내려 앉아있었다. 차명석씨도 이때 나왔다.

정통해설 대표주자 허구연씨
“분석하고 설명할줄 알아야”

정통 해설을 고집한다=1970년대 중반까진 아나운서의 시대였다. 화려한 수사로 저 밑 애국심을 풀무질했다. 이광재(올림픽 등), 한보연(권투), 박종세(야구) 등 여러 유명 아나운서는 언어마술사. 그들의 방송에선 ‘한국이 제일 잘 한다’.

제동을 건 이 중에 허구연 야구해설가가 있다. 1982년 국내 최초로 방송사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전문해설가 시대의 물꼬를 텄다. “그 전까지 대부분 해설가는 ‘맞네, 아니네’ 캐스터를 보조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방송사가 필요에 따라 해설가를 구해 회당 3만원 남짓을 줬던 80년대 들머리에 1400만원의 연봉계약을 이끌어냈다.

“나는 오소독스(정통)하게 해설한다”는 말이 다부지다. 국가대표 야구선수를 하다가 해설계에 입문한 허씨는 “해설가는 가르치거나 예단하는 이가 아니다”라며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의 인과를 분석하고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준·심권호·차명석씨등
선수출신 ‘폭소’ 로 스타덤

스타선수 출신, 침묵에서 폭소로=1990년대를 지나며 해설 영역은 그야말로 전문화, 다양화했다. 방송사한텐 선수 출신이 누구보다 매력적이지만 언변이 못 미덥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스타급 선수들을 해설가로 영입하지만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이들에겐 해설이 금메달보다 어려웠던 셈.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레슬링 경기를 해설했던 김영준씨가 새 이정표를 세웠다. 그의 “빠떼루(파르테르·벌칙)를 줘야 함다 이잉”의 억센 호남 사투리는 당시 만인의 언어였다. 그는 이듬해 주택공사 홍보실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 뒤를 심권호(레슬링), 차명석, 이병훈(야구)씨가 이었다. 언어가 상대적으로 덜 정화된 탓에 되레 솔직담백함이 빛났다. 2003년 캐스터가 “야구 선수들의 부인은 모두 미인”이라고 하자 “그런 전통이 있지만, 제가 그 전례를 깼죠”라고 말하기도 했던 차씨는 ‘자학형 해설’이란 또 다른 유형의 주인이기도 하다.

눌변가 차범근씨
“감동이 달변을 누른다”

감동으로 때운다=“스토킹은 날 위해 그 사람의 앞 모습을 잡아두는 것이고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뒷 모습을 바라봐주는 것이다.” 방송 초기, 김제동씨는 한낱 분위기 메이커였다. 미남도, 줄기차게 웃겨대는 개그맨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각종 쇼 프로 안주인이다. 하는 일이 딱 해설가다. 사랑, 우정 따위를 해설하며 시청자 가슴에 못 박힌 듯 진한 울림을 준다. 그의 ‘어록’은 책으로까지 나왔다. 2002년 월드컵을 코 앞에 두고, 말힘 센 신문선 축구해설가가 문화방송을 떠났다. 물망에 오른 이는 ‘차범근’. 하지만 그는 눌변이다. 고심 끝에 그를 앉혔다. 이유는 하나다. “차범근이 우리나라에서 축구 제일 잘 하잖습니까.” 톡톡히 덕을 봤다. 매번 승리 때마다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한 차씨의 ‘침묵’은 백 마디 수사보다 감동적이었다.

20대 신세대들
“무게? 재미가 우선이다”

내가 바로 신세대 해설가다=김대환(26)씨는 이종격투기 해설가다. 국내 6명 가운데 한 명이다. 대학생이기도 하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해설원칙이다. “격투기는 대치국면이 많아 의외로 심심한데다 대중화도 덜 됐기 때문”이다. 2001년 케이비에스 스카이에서 차성주씨 해설로 처음 이종격투기가 방송됐고 2003년 10월께 에스비에스 스포츠에서 자신도 비로소 ‘해설가’가 됐다. 2000년 이미 이종격투기를 주제로 한 홈페이지를 운영해 인기를 얻었던 게 인연이 됐다. 현재 엑스티엠(XTM)에서 활동하는 김씨는 “이 나이에 전문가라며 무게를 잡는 게 더 우습다”며 “재미와 전문성이 반비례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50만에 가까운 이종격투기 팬을 위해 하루 3~4시간 미국, 일본 경기소식 등을 챙기며 공부한다. 게임방송엔 더 많은 ‘김대환’들로 넘친다. 자기만의 언어, 자기만의 해설로 팬덤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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