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5 18:45
수정 : 2005.05.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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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옥/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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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을 쓸까, 황우석을 쓸까. 이문열 쓰며 하품하지 말고 황우석 쓰며 즐겁자.
대중문화 어쩌고 섹션에 글쓸 소재 찾다가, 미국 간 대중 소설가 이문열에 눈길을 보낸다. … 재미없어라. 이문열의 나라걱정은 졸립다. 한 때는 분했다. 다음엔 짜증났다. 어느새 피곤하다. 그리고 드디어 … 졸립다. 졸린 눈 부비고 헤죽대며, 영국갔다 온 황우석 보러 간다. 먼저 이렇게 토 달자. 이제 황우석은 대중 과학자다. 대중 거시기 섹션에 이렇게 황우석을 우겨 넣자. 그리고 대중문화계 종사자로서 오늘의 이 과학사태를 바라보자. 딱 종사자로서, 보는 만큼만 보자.
과학이 한국대중에게 폴짝 뛰어온다. 난치병 환자들의 절박성 속으로, 노벨상 바라는 우리의 명예욕 속으로, 인간복제라는 근원적 윤리논쟁을 하게 될 우리의 이성 속으로…. 난치병 치료, 노벨상, 인간복제. 익숙한 단어들이다. 아니다. 익숙한 건 단지 그 활자였다. 일상 속엔… 없었다. 그 코딱지도 없었다. 단어들은, 하양 까운을 입은 노랑 꼬불머리 파랑 눈의 서양박사들을 연상시켰다. 지금… 그 연상이 바뀐다. 그래서 한국이름 검은 머리 귀엽게 웃음짓는 황우석의 의미가 크다. 우리의 자긍심을 부추겨서가 아니라, 우리의 연상이 다채로와져서다. 과거와 현재에만 존재하던 우리가 미래에도 서 있다.
우리의 미래가 미국 어느 낯선 땅 항공우주국(NASA)과 그 친구들에게만 맡기워져 있다가, 이제 서울 신림동 서울대 가축 사육장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동남아 동굴 속에서도, 아프리카 초원 속에서도 미래를 여는 다른 얼굴 다른 몸통 사람들이 있겠다. …세계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가깝고 즐거워졌다.
과학에 국적 부치는 일은 편협하다. 민족주의도 나발, 애국심도 나발인 내가 굳이 한국 국적의 과학자에 방점을 찍는 진짜 이유는 하나다. …직업적 관심사. 바로 상상력의 문제다.
상상은 과학에 앞서 태어난다. 과학보다 못난 얼굴로 태어나서 과학의 자양분이 되어 잘 생긴 과학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이 자양분을 제공해야 되는 직업이 바로 창작자다. 그에 대한 직업적 쪽팔림으로 너스레를 떠느라 말이 많았다. 십년 전, 혹은 이십 년 전, 서양의 허무맹랑 공상과학 영화 속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되었음을 안다. 그 때, 미래는 감히 내가 상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 때 오늘의 현실이 멀 듯이 오늘 난 또 미래를 멀리하며 세상 한 켠에 쭈그려 앉아 있었겠다. 상상력이 공중을 날지 못하고 땅만 째려보는 걸로 끝난다.
가깝지 못하면 상상하기 힘들다. 이제 상상할 건덕지가 내 옆에 있다. 황우석은 서양박사보다 귀엽고 황우석의 연구동은 NASA보다 친근하다. 나는 이제 내 집에서 우리의 미래를 그냥 막 상상한다. 상상이 허무하고 맹랑하지만… 괜찮다. 황우석 같은 과학자가 내 옆에 있다. 나는 미래를 상상하고, 과학자는 실현한다. …이런 걸 해 보고 싶었다.
줄창 황우석 타령만 해대서, 냄비근성이라고 욕을 하던 말던 이때다 싶게 들떠 보겠다. 부시가 배아줄기세포를 없애겠다고 신림동에 미사일을 날리면, 머리에 냄비 쓰고 미사일 막겠다며 들떠 보겠다. 이문열이 미국가서 서울대 졸업생들과 함께 오직 한국 땅만 보며 우리 걱정을 하던 말던, 나는 서울대 연구동에 파묻힌 황우석과 함께 한국에서 세상을 보며 과학 좋아라 들떠 보겠다. 냄비 두드리면서….
그나 저나 드라마 작가들은 서둘러야 한다. 불치병 드라마 비상 걸렸다. 병 걸려 죽네 사네가 아니라, 치료비 마련하는 이야기만 해야겠다. 클났다. 불치병 드라마는 십년 안에 빨랑 쓰고 접도록 하자. 얍삽한 나는 황우석 때문에 과학 좋다며 과학에 들러 붙는다. 과학 드라마 쓸까보다. 또 다른 분야, 다른 즐거운 사람이 나타나면, 쫄래 쫄래 또 다시 들러 붙을 거다. 지금은 오직 즐거운 배아줄기세포…. 인간복제 윤리문제를 간과했다 마라. 내 윤리관은 확고하다. …오직 즐거운 배아줄기세포.
인정옥/ 드라마작가, <내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사진 MBC 홍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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