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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7 19:04 수정 : 2005.05.27 19:04



④ 베이다오 VS 백원담 - 중국 개혁, 개방 이전과 이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중국의 망명시인 베이다오와 중문학자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주의의 현실과 미래, 미국 주도 세계화의 병폐, 그리고 베이다오 자신의 이력과 문학 작업 등에 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⑴ 이냐시오 라모네(프랑스 논객) vs 홍세화 - 신자유주의에 맞서
⑵ 은구기 와 시옹오(케냐 출신 소설가) vs 이석호 - 세계화와 탈식민문학
⑶ 하스미 시게히코(전 도쿄대 총장) vs 도정일 - 동북아 민족주의의 이상기류
⑸ 루이스 세풀베다(칠레 출신 소설가) vs 송병선 -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
⑹ 가라타니 고진(일본 문학평론가) vs 황종연 -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문혁 하방때 인생 전화점…혁명 부정하게돼
사회주의 패퇴했지만 사회주의적 이상 유효

백원담==70년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부터 시를 써오셨는데, 당시 시작 배경은 무엇입니까?

베이다오==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면 1968년부터 시작된 하방운동이었습니다. 허베이 산촌에 가서 일하며, 향수·상처 같은 공허한 주제를 고시체로 썼지요.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의 위기였고, 가장 큰 소득이라면 중고등학생들이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때 쓴 시들을 지하에서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고, 농한기가 되면 학생들이 베이징의 살롱에 모여 자기들끼리 쓴 시를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시집이 만들어지고 했습니다.

백원담==〈회답〉으로 대표되는 시가 “관념과 실천에서 중국시와 세계시의 역사적 관계를 회복했다”고 평가됩니다. ‘천한 번째의 도전자’라는 당신의 다른 이름도 시에서 유래하지요?


베이다오==〈오늘〉파의 시는 과거도 미래도 믿을 수 없고 오로지 현실만 있다는 식의, 모든 불신을 상징합니다. 그것의 추구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음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혁명을 원하는 천안문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지요. ‘천한 번째의 도전자’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당시 정치환경에 대해 완전히 반항 일변도로 나갔던 것이지요.

백원담==당신이 말하는 혁명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베이다오==저는 1949년 신중국과 같은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번도 혁명을 회의하지 않았는데, 69년 하방 때 처음으로 철저하게 의심하고 100% 혁명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중국혁명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지금 보면 완전히 부정을 할 수 없어요.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사실 다 패퇴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착취관계라는 것을 목도하면서 저는 사회주의를 인간의 이상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백원담==사회주의에 대한 개혁, 자본주의에 대한 개방이라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80년대의 주류 의식 형태는 신계몽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서구적 현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담고 있었지요. 그러나 뚜렷한 방향성은 없었다고 보는데요.

베이다오==1978년과 1989년, 개혁개방 실시 뒤 10년, 처음에는 모두들 희망에 차서 미래가 낙관적으로 보였지요. 해방감, 오랜 억압에서 최초로 맛본 자유의 표현, 유치했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그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지식인들은 80년대를 그리워합니다. 르네상스처럼 모든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자유와 분위기가 주어졌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시 계몽이란 지금 보면 굉장히 천박한 수준입니다. 서양숭배, 중국의 과거와 전통에 대한 부정이 당시 신계몽의 입장이었습니다.

백원담 개혁개방 서구에 대한 열망 아니었나
베이다오 당시 계몽은 전통에 대한 부정이었다 망명 16년…시간 갈수록 전통과 해후

백원담==필명이 ‘북방의 섬’입니다. 그 고립과 격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중국 변혁의 중대한 두 시점에 온갖 바람에 맞서며 미래를 열고자 했지만, 몽롱 속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구가 오늘의 문제적 중국을 낳은 것은 아닌가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자본주의 세계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중국의 선택을 어떻게 보십니까?

베이다오==89년 6월 4일 나는 베를린에 있었고, 지금은 미국에 있는데, 밖에 머물다 보니 서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80년대에는 맹목적이고 환상에 차 있었다면 이제는 거리를 갖고 보게 됐고, 특히 극단적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사회를 많이 성찰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이 이끈 자본주의의 길은 사회주의의 해묵은 문제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자본화는 미국화를 의미하며, 거기에는 새로운 위험이 존재합니다. 불공정·빈부격차·오염·교육문제·도덕위기 같은 것 말이죠. 공산주의 이후 종교가 없는 중국 사회의 도덕적 진공 상태는 심각한 정도지요. 〈섬〉은 초기작으로 현실세계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유배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16년 간의 해외 체류는 저로서는 ‘표류하는 섬’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저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그로부터 얻는 게 더 많아서 때로는 고맙게도 생각합니다.

백원담==90년대 중후반 대륙에서는 신좌파 논쟁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파는 시장화가 정치적 자유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더군요.

베이다오==굉장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특히 쟁점이 된 것은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관계이지만 너무 단순하게 문제를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민주는 서구의 그것과도 한국의 민주화 과정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백원담==당신은 사람들의 숱한 모순적 진실들이 시 속에 공존하기 위해 시작법에 있어서 필름 몽타주 기법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문(文)’의 의미, 곧 중국문자적 특성과 ‘문’이라는 형상의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베이다오==상형문자, 그것은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논리적인 글보다는 이미지 사고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 전통문학은 저의 시 창작 방법론과 관련이 깊습니다. 젊었을 때는 반전통의 입장이었는데, 미국에 있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과의 해후랄까, 미학상으로도 전통문학의 강점을 느끼게 됩니다.

백원담==몇 해 전 한 시인이 쓴 중국 농민 현실에 대한 충격적 작품을 접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농민들은 농사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도시로 날품을 팔러 와야 합니다. 6억 농민이 중국의 발전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시인은 오늘의 작가들이 그 무거운 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하더군요.

베이다오==저로서는 해결할 능력도 자신도 없습니다. 격절해 있으니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꽃구경 하는 입장입니다.

백원담==〈둑(岸)〉이라는 시에서 팔뚝을 뻗어 가난한 아이들의 작은 배를 기다리며 한 줄기 등불을 실어보낸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중국의 새로운 미래인가요?

베이다오==오히려 미래가 매우 걱정됩니다. 중국 뿐 아니라 한국·미국도 아이들은 일본 만화를 소비하는 등 이제 같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요. 이 비슷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동질의 소비문화를 키워가고 있는 게 결국 지구화의 문제인데, 그래서 이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원담==저는 동아시아라는 지평 위에서 한국과 중국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동아시아는 없고 중국과 세계라고 하면 그것은 곧 서방, 미국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베이다오==아시아의 상황은 복잡하지만, 대항해야 할 대상은 일본입니다. 최근 중-일, 한-일 충돌이 일어났는데, 가장 좋은 것은 평화공존입니다. 2차대전의 책임을 일본이 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나라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민족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국가의 권력에 의해 이용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정리 백원담 교수 arum@mail.skhu.ac.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80년대 중국 대표시인 ‘천안문 사태’ 불 당겨

베이다오는 1980년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76년 4월5일, 문화대혁명을 종결짓는 청명절 시위 당시 ‘베이징의 봄’을 주도했으며, 〈오늘(今天)〉이라는 지하간행물을 창간하고 몽롱시들을 발표했다. 1989년 천안문사건 때도 청명절 시위의 주역인 웨이징성(魏京生) 구명운동을 전개, 촉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천안문사건 전에 망명해 이후 7개국을 돌아다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오랜 이국생활에서 중국사회주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생태사회에 대한 고민을 시작과 번역 출판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이번 국제문학포럼에서는 자본주의적 근대 문제를 도시화의 문제 속에서 제기했다. 시집 〈베이다오시선(北島詩選)〉과 〈파도(波動)〉 〈원고지 위의 달빛〉 등 중단편 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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