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16:13
수정 : 2005.06.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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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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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고등학생 수업 7시간, 정규 노동자 근로 8시간, 대학생 수업 4.5시간.
수치로 보자면 대학생은 이 시대의 ‘한량’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은 강의실 안이든 캠퍼스 밖이든 대개 분주하다. 예전의 ‘놀고 먹는’ 대학생과는 퍽 다르다. 바쁜 대학생의 흔한 변명 하나, “저 조모임 하러 가요”이다.
조모임이 대학 생활을 점령했다. 발표학습을 위한 5~6명의 임시 모임이다. 대부분의 강의가 발표와 병행되는 추세이고 그 점수 비중도 만만치 않다. 서울교대 강병규(초등교육 4년)씨는 “발표 하나가 평가의 20~3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의 처지에서는 20여분의 발표가 학점의 1/3에 해당하니 조모임은 ‘공들여야 할 탑’일 수밖에. 조모임의 풍경이 바로 대학의 풍경이다.
신입생들만 있는 곳을 들여다보자. 이보다 더 좋은 ‘친목회’가 없다. 과제 토의는 제쳐두고 서로에 대한 관심사에 한눈 팔다 맛난 밥집을 찾아가며 하루를 보내기 일쑤. 성균관대 윤승덕(경영학 2년)씨는 “조모임을 통해 친구를 많이 만난다”고 말한다. 대형 학부의 황량함 속에서 건진 조원들만큼 애틋한 이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낡게 마련. 3, 4학년에겐 이 인맥도 더 나은 취업을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다. 이화여대 최란(국문 3년)씨는 “서로의 일정을 양보하려 들지 않아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며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전한다.
고학년 특히 복학생은 물 만난 물고기. 그들 조는 소수정예다. 경기대 전수진(국제통상 4년)씨는 “짜임새 있게 조원 역할을 분담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목표는 오직 A+ 공략이다. 프로로서 의기투합하되 결별의 때를 아는 쿨한 모임이다.
조모임이라는 서식지에서 두드러진 인물 유형은 2005년 대학생의 실체를 대변한다.
‘무임승차’형. 약지만 높은 인내력을 갖췄다. 인적 구성이 뛰어난 조를 골라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조에 기여하는 능력은 무시한다. 모임 마다 30분 이상 늦기, 마무리 중일 때 미소와 넉살로 이름 얹히기, 면박을 이겨내며 밥은 또 많이 먹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연애의목적’형. 모든 이성 조원들은 잠정적 연인이다. 조별 모임 때 눈빛은 날카롭지만 초점이 불분명하다. 구애에 힘을 쏟는 터라 정작 조모임 땐 지쳐있는 경우도 흔하다. 중앙대 이경하(심리학 4년)씨는 “조모임을 통해 두 번이나 애인을 바꾼 친구도 있다”고 전한다.
‘잠수’형. 출석은 하지만 얼굴은 모른다. 연락처도 있으나 통화할 수 없다. 성균관대 윤씨는 “흔히 타과생과 만나는 교양 수업에서 무단잠적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는 듯 하다”고 설명한다. 발표조가 발표를 준비하는 일보다 더 고심하는 게 바로 조 리포트에 잠수한 이의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진실에 대한 사랑으로 갈등한다.
네 번째로 ‘암살’을 두려워하는 ‘독재자’형이 있다. 인하대 서아무개(26)씨는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 탓이 크다”고 분석한다. 조모임 자체를 불신한다. ‘커닝’을 위한 협력과 시너지 효과를 위한 ‘협력’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조모임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무엇인가. 프리젠테이션 쇼맨십? 일하면서 인맥을 관리하는 재주? 아니면 백 명의 사람을 망각하는 일도 거뜬한 마음의 항체를 키우는가? 실무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형 인간이 되기 위해 오늘도 아낌없이 조 단위로 헤쳐모이는 거기, 당신은 없는가.
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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