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17:04
수정 : 2005.06.01 17:04
중견 도예가 한애규씨에게 둥글둥글하고 풍성한 몸매의 여성상은 90년대 중반이후 작가적 특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이어져왔다. 모성이나 생명, 땅의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순박한 점토 인물상들을 숱하게 가마에서 구워냈던 작가는 이후 또다른 강박에 시달렸다. 90년대 초 중년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살림의 애환을 담은 형상 조형물을 선보였다가 나름대로 전환을 모색하며 낸 이 여성상 작업은 성과만큼 ‘또다른 작업의 꼬투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번번히 좌절시키는 장벽이기도 했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 13일까지 열리는 한씨의 근작전 ‘침묵’은 모성성의 형상화로 집약되었던 이전 작품들과는 꽤 달라진 표현법의 근작들을 모았다. 인물, 동물 형상을 단순화해 고인돌, 거석이나 비문, 혹은 닳은 옛 석물처럼 덩그러니 놓은 작업들은 제목대로 침묵을 웅변하고 있다. 각지고 뭉툭해 보이는 형태와 흙 특유의 따뜻한 질감이 어울린 이 덩어리들은 ‘삶의 건강성’과 ‘허무’ 사이에서 분열된 삶을 고집해온 작가의 지난길을 넌지시 암시해준다.
도예 장르의 장벽을 넘고,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좀더 인간 존재를 직시하며 추상과 절대로 나가려는 의도 앞에 한씨는 최근 많이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 작업이 너무나 괴롭지만 피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던 작가였던 만큼 새 출품작들은 고통스런 변화를 갈망해온 한 도예가의 몸부림이 떨구어낸 앙금과도 비슷하다. 누에고치나 미라처럼 흙판 속에 웅크려 자는 사람들을 부조한 2001년 미발표작 ‘꿈 ’연작은 이런 이력에 대한 작가적 설명이 아닐까. 작가는 한 신문 서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서 하나의 태도를 배우게 되는데, 그건 그 각자의 감각이 아무리 외이고 잘못됐더라도 철저하고 순수하면 나중에는 어떤 보편성에 도달한다는 점이다.”(02)736-102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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