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18:19
수정 : 2005.06.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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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 규모의 가게에서 반이 아이들 공간이다. 지난달 27일 직접 아이를 돌보고 있는 고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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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다른 사람 이야기
하나 : “30대 아주머니였어요. 올 초 남편이랑 같이 와서 남매를 맡겼어요. 연극이 끝나고 와서 그러더라고요. 정말 연극을 좋아했는데 5년 만에 처음으로 봤대요. 애들 때문에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저더러 고맙대요.”
둘 : “애가 한 3살 됐나 봐요. 근데 엄마가 젊더라고요. 처음 애를 맡긴다며 너무 불안해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랬는지 연극을 보는 중간에도 전화를 하더니 결국 1시간 반만에 다시 왔어요. 아니, 연극은 다 봤냐니깐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더래요. 근데 애는 신나게 잘 놀고 있었어요.”
셋 : “원래 30개월 미만은 잘 받지 않아요. 엄마부터가 불안해서 잘 맡기려 들지 않죠. 근데 23개월 된 여자아이를 덜컹 맡아 달래요. 워낙 씩씩하게 잘 노니까 걱정 말라면서요. 웬걸 엄마 나가자마자 아이가 울어요. 결국 공연이 끝날 때까지 2시간 가량을 유모차에 태워 대학로를 돌았어요.”
● 그 사람의 자기 이야기
왜?= “고등학교 때 대학로로 이사와서 1998년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15년이 다 돼가요.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던 곳인데, 막상 내 애를 데리고 마로니에 공원말고는 갈 데가 없는 거예요. 눈치를 주니 흔한 찻집도 들어가기 어려워요. 저 뿐이겠어요? 그래서 지난해 7월 직접 <아기곰> 문을 열었어요.”
아기곰?= “처음엔 그냥 아기들 놀 공간을 갖춘 카페였어요. 근데 하루에 한 두 건씩은 꼭 전화가 오더라고요. 공연을 보고 싶은데 탁아 서비스는 안 되냐는 거예요. 9월부터 아기를 맡아 돌봤고, 그 다음달엔 일요일까지 문을 열어야했어요.”
당신은?= “저요? 똑같지요, 뭐. 저 공연 되게 좋아했어요. 대학생 때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연극을 봤고, 지금은 특히 뮤지컬이 좋아요. 그런데 극장 못 간 지 7년이 넘어요. 3살, 6살 된 애들을 키우느라 그랬는데 이젠 남의 애까지 보고 있으니. 에휴”
공동운명체?= “안타까워요. 연극이 잘 되면 여기도 잘 될 거예요. 제 가게는 대학로 극장들과 한 배 탔어요. 탁아를 부탁하는 사람들 90%가 공연 보러 오는 이들입니다. 배우들도 애들을 맡겨요. 카페를 찾는 손님들 아이들만도 하루 20여명은 되요. 지난해 9월엔 아룽구지 극장에서 여성연극을 한다 해서 무료탁아를 해줬어요. 올해 서울연극제 때도 공짜로 애들 돌봐줬죠. 하루 4~5명, 토요일처럼 많을 때는 10명도 넘어요.”
고민정(33)씨. 대학로 <아기곰>의 주인장. 첫 애를 가지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6년여 만에 시작한 사업. 한 달만 있으면 문 연 지 1년이다. 따져보니 이곳을 지나간 아이들만 대략 1000여명. 꼼짝없이 아이에게 묶이었던 엄마의 손발을 풀어주는 마술사다. 그의 가게 덕분에 대학로 극장에 치맛바람 좀 부는 게 작은 소망이다.
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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