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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비슷하다고요?
원래 짧은 문장 즐겨씁니다 “5월 말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사실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조두진(38·사진)씨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겨레문학상은 특히 선망의 대상인데, 내 차지가 되다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씨는 경남 합천 태생으로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지금은 대구의 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번 작품이 공식 등단작이다. 수상작 <도모유키>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순천 인근의 산성을 무대로 일본군 하급 지휘관 다나카 도모유키와 성에 잡혀 온 조선 여인 명외를 주인공 삼은 소설이다. 한국 작가가 일본군의 처지에서 전쟁을 그렸다는 점이 이채롭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는 식의 구분 짓기, 또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한정되는 사고방식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너무 전투적인 역사관을 지니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역사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역사를 보는 종합적인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적의 편에서 본 전쟁’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이든 조선인이든 미래를 전쟁에 빼앗긴 이들의 얘기라는 시각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왜군 하급 지휘관과
잡혀온 조선여인 명외
순천배겨 전쟁 속 사랑 그려
대구서 현직 기자로 활동
“전업작가 될 생각 없다
쥐어짜듯 써야 하므로… 소설 속에서 도모유키는 조선 여자 명외에게 연정을 품고 명외 아비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내고 명외를 성 밖으로 탈출시키는 등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명외는 자신을 향한 도모유키의 사랑을 잘 알고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왜병’인 그를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감정 놀음은 삭막하고 살벌한 전장에 한 가닥 인간적 훈기를 불어넣는 구실을 한다.
작품 소재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전쟁인데다 단문 위주의 문체 때문에 <도모유키>는 얼핏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를 떠오르게도 한다. “김훈 선배와 마찬가지로 저 또한 기자이기 때문에 짧은 문장을 즐겨 구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작품 <도모유키>말고도 습작품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 단문 위주의 문체를 사용한 것들입니다. 2001년 가을에 어떤 아마추어 문학상에 응모해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그때 심사평에서도 ‘문체가 간결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칼의 노래>가 뜨고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는 걸 보면서 저 스스로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성과 예술성에 재미까지 두루 갖춘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조씨는 “등단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전업작가가 되면 먹고살기 위해 의지나 능력과 상관없이 쥐어짜듯 써야 할 것 같아서”란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왜군의 눈으로 본 전쟁 형용사·부사 없이 고밀도 서술 ● 심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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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에서 넘어온 작품은 총 5편. <메타세퀴야 그늘 아래서>는 원양어선 선장의 죽음을 둘러싼 소재상의 시원함이 엿보였으나 이를 뒷받침할 구성과 표현이 모자랐다. <에피메테우스의 상자>는 희랍 신화의 틀을 이용해 현실의 한 단면을 비춰본 것. 시간과 공간의 구성과 대비의 방식이 지나치게 도식적이었다. <유리창>은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정체성 확인에 골몰하는 주인공의 설정까지는 그럴 법했으나 줄거리가 너무 복잡했다. <마녀>는 이른바 소설의 정석을 따른 작품. 대학 동창인 세 여인이 삼십대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보여줌에서도 소설적 안정감이 확보되어 있고 주인공 노처녀의 편력도 그 나름의 밀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의식을 지배한 빨간 구두의 설정 그것만으로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도모유키>는 근자 우리 소설계를 풍미하는 이른바 역사물에 드는 작품.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주둔지 순천 인근 산성에서의 11개월간의 주둔과 퇴각을 배경으로 하여 하급 지휘관 다나카 도모유키의 최후를 다룬 이 작품의 강점은 다음 세 가지. 소재상의 강점이 그 하나. 임란이란 적어도 한·중·일 3국이 관련된 역사라는 사실이 지닌 힘.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일본군 하급 지휘관의 시선으로 기술되었다는 점. 임란이란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 등의 각각의 시선에서 다루어질 성질의 것. 이 시선의 변경은 성숙함을 가리킴이라 할 것이다. 셋째, 고도의 밀도를 지닌 문체로 일관되었다는 점. 형용사, 부사 따위를 배격하기, 동작만을 부각시키기, 과감한 생략법 등은 주제를 소화해내기에 적절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의외에도 센티멘털리즘이 빚어졌는지도 모른다. 조선 여인 명외를 가난에 시달려 장꾼들에게 팔려가던 어린 누이 이치코와 겹쳐보면서 죽어가는 도모유키의 최후가 그러한 사례이리라. 본심 심사위원 김윤식 윤흥길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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