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8 16:13
수정 : 2005.06.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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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우/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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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철이다. 그 자리, 그 냄새, 그 복학생, 그 여자. 내 학교 중도(중앙도서관)가 지겨운가? 떠나라! 유목민처럼 다른 대학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거기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내 학교가 다시 보인다. 이름하여 지하철표 한 장으로 만끽하는 탐방, 아니 중도 방랑기!
‘격’이 다른 도서관에 발길이 먼저 닿는다. 고려대는 최근 개교 100돌에 맞춰 100주년 기념관을 짓고 중도를 리모델링했다. 그야말로 ‘럭셔리’하다. 한동안 “바닥이 너무 반짝거려 치마를 입고 다닐 수 없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 일반 열람실에 컴퓨터, DVD 시설, 오디오 장치가 갖춰진 멀티미디어실, 그룹스터디 룸, 박물관 등 모든 학습시설이 집약돼 있다. 좌석 배정기가 자리를 정해주고 학생은 공부할 시간만큼 자리를 예약한다. 하지만 첨단 시설과 의식 수준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이 학교 김민수(경제학과 2년)씨는 “좌석 독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건데 예약해놓곤 수업을 듣는 등 부작용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많은 대학 도서관이 ‘멀티플레이어화’를 꾀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중도에 TTL 존을 들어앉혔고 연세대는 2007년 제2중도를 착공할 예정. 한양대는 디지털 중도를 꾀한다.
금남의 이화여대 도서관. 편안함이 먼저 와닿는다. 실내장식이 깔끔하고 쾌적한데 지하1층 매점 옆 게시판만 소란이 끊이질 않는다. “CD 플레이어 가져간 사람, 자수해라.” 여느 대학 크고 작은 도난사건은 그대로다. “누가 내 빵을 가져갔어?” 빵도 안전하지 않다. 그럼 곧장 꼬리에 꼬리를 묻는 대화들이 이어진다. “누가 먹을 걸 도서관에 가지고 오래?”부터 “도둑질 좀 하지 말자” 등등. 영락없이, 이대인들의 또 다른 ‘익게’(익명게시판)다. 서울대도 마찬가지. 댓글이 가득 담긴 대자보, 게시판에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도서관내 크고 작은 사건은 필연적으로 CCTV 설치 논란을 낳는다. 이대와 서울대 외 여러 대학이 홍역을 치렀다. 강미리(이대 특수교육학 2년)씨는 “도난 사건도 막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사람냄새가 나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목소리를 키운다. 고려대 과학도서관처럼 이미 설치된 곳도 있지만 빵을 잃어버린 이들 중에도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더 크다.
방랑을 끝맺음하기엔 서울예대가 적격. 소박하다. 학교에 들어서면 붉은색 가교식 건물이 쉬이 눈에 띄는데 도서관이다. 번쩍이는 외관의 도서관들에 견주면 초라하다. 흔히들 부르는 이 ‘빨간 다리’는 도서관이라기보다 어쩜 자유로 이어주는 다리라 부르는 게 옳다. 학생들은 이 안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음악도 감상한다. 날 저물 즈음 어딘가 창이 들려온다. 빨간 다리 지붕과 맞닿은 옆 건물 옥상이다. 아쟁을 켜거나 장구를 치는 학생들, 작곡에 몰두한 이들,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적시는 이들이 그곳에 있다. 탁 트인 옥상의 바람만큼 머리가 가벼워진다. 서울예대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경우, 다른 종합대와 같이 도서관 시설이 좋지는 않다. 컨테이너 가건물이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창틈으로 새들어오는 대금 소리의 낭만이 있다. 최근 한예종은 고대, 경희대, 한국외대 도서관과 협정을 맺고 학생들이 이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 2006년께 새 도서관을 완공한다. 지금의 소박함이 사라진 대신 아쉬움이 무겁게 자리할 듯 하다.
각양각색의 도서관 속에 백태만상의 각 학교 문화가 녹아있다. 한 시인의 시구를 조금만 바꾸면 이렇지 않을까. “우리 대학이 지금 어디로 가는 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먼저 중도를 보게 하라.”
장정우/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
<고침> 지난주 대학별곡 ‘조 모임으로 헤쳐 모여!’ 기사(6월2일치 31면)에서 ‘독재자’형에 대해 언급해준 이는 인하대 서아무개(26)씨가 아닌 조현영(서울예대 문예창작 2년)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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