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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16:52 수정 : 2005.06.09 16:52

그림 이보름



행복은 알 듯 모를 듯 하나씩 오지만 불행은 떼를 지어 다닌다는 서양의 격언이 떠올랐다

공지영 8

나는 이제 괜찮은데, 마치 내가 괜찮아질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가 나타나 내 차를 가로막고 선 것이다. 내가 괜찮아진 것은, 그건 그냥 얻어진 일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어딘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내 자신을 파괴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의 품에 안기는 일도 그 후로도 이 년 넘게 계속되었다. 나는 그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뇌의 어느 곳에서는 내가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일본에서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는 뇌일혈로 쓰러지셨다가 겨우 회복해서 고향인 서귀포로 내려가시고, 할아버지가 물려주셨던 아버지의 빌딩은 은행으로 넘어갔고 우리가 살던 집은 출판사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는 서울 근교 분당의 저수지 근처에 겨우 집을 구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민준이 할아버지인 이 변호사님의 덕택인 거 같다고 록이가 내게 귀띔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서울시민이었던 우리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힘들었다. 엄마가 타던 줄리엣이라는 파란 차를 아르바이트용으로 물려받아 타려고 하는데 ‘경기’라는 번호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타향으로 식구들과 함께 밀려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진돗개인 미루는 죽고 풍산개인 번개가 낯선 도시 낯선 집에서 나를 보고 짖어댔다. 나는 번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조차도 내가 낯설 때는, 행복은 알 듯 모를 듯 하나씩 오지만 불행은 떼를 지어 다닌다는 서양의 격언이 떠올랐다. 내 편으로 말하면 그것이 왠지 다행스럽게도 생각되었다. 하나씩 왔다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한 가지 불행으로 한 가지 불행을 잊고 이것이 견디기 힘들면 저 불행을 생각하고, 그것도 힘이 들면 불행들이 서로 제가 더 불행한 거라고 싸우는 꼴을 우두커니 지켜보면 되니까.

― 우린 가난해진 거야. 네 아빠가 결국 딴 데만 보다가 일을 저지르고 만 거야!

평생 가난을 모르던 엄마는 우리가 판자촌으로 밀려난 듯 이성을 잃곤 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집 밖으로 떠돌았다.

― 엄마, 제발 좀 진정해요. 우린 가난하지도 않고 집도 있어… 먹을 것도 있구, 게다가 아무도 아프지도 않다구!

침착한 록이 대신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록이와 나는 그런 날이면 호숫가로 나와 소주를 마셨다.


― 하필이면 또 호숫가야…. 록아, 내 이름이 말이야, 혹시 홍이가 아니라, 호(湖)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던 록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소주로 더워진 뺨을 문지르고는 그 호숫가를 뛰었다. 가끔은 속이 상한 록이도 내 뒤를 따라 뛰었다.

― 그러면 내 이름은 록이가 아니라, 로(路)일 거야, 나는 세상 모든 길을 가보고 싶어.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하는 록이와 나는 그렇게 숨차게 달려갔다. 그러면 잠들 수 있었다. 그런 날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내 발바닥에 물집이 여러 번 잡히고 그 투명한 물집에 무명실을 꿰면서, 괜찮아 홍, 괜찮아 홍, 했다. 그가 소설을 쓰는 동안 그렇게 나는 뛰었고, 외환 위기로 거의 부도에 몰린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할아버지처럼 한글학자가 되겠다는 꿈 같은 건 다 접고 학교가 끝나면 맥주를 마시러 가는 친구들에게, 으음 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하고는 짐짓 태평한 얼굴로 말하고는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버린 아버지의 출판사로 갔다. 밤새 빨간 볼펜으로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교정을 보았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다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아무도 모른다.

스물둘에서 스물아홉이 되도록 그런 날들이 하루, 하루 흘러갔다. 친구들 결혼식에 가서 병풍처럼 신랑 신부 뒤에 얌전히 서서 사진을 찍거나 출판사 집, 출판사 집을 오갔다. 가끔 노처녀인 친구 지희하고 사주 카페에 가서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에게 손을 맡기고 앉아서, 돈은 많이 벌겠어요? 좋은 사람은 언제나 나타나는데요? 하품을 참으며 그런 질문을 하거나 타로 카드를 뽑으며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건 언제쯤 뽑아들 수 있을까, 낄낄거렸다. 그것도 심드렁한 날에는 락 카페에 가서 귀를 때리는 멍멍한 음악을 듣다가 우리, 그만 감자탕이나 먹으러 갈래? 하는 말을 주고받곤 했다. 지난 해 민준이 약혼을 파기한 채로 귀국할 때까지는 그랬다.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7년 전 내가 울면서 커다란 가방을 끌고 그의 집을 나설 때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던 그가, 이제 내 앞에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멀리서라도 좋으니까, 내 사람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설사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좋으니까, 설사 그 사람 옆에 아름다운 일본 여자가 저 한국 여자는 누구야, 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서 있어도 좋으니까 한번만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이었다. 나는 기어를 올렸다. 차를 그대로 출발시키려는데 그가 빠르게 내 곁으로 올라탔다. 그가 문을 닫자 밖에서 그와 함께 몰려온 싸늘한 냉기가 내 귓가를 스쳐갔다. 누군가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 운명의 나팔 소리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쓰지 히토나리 8

홍이가 운전하는 차는 목적지도 없이 서울 시내를 달린다. 신호에 걸리면 멈추었다가 파란 불이 켜지면 다시 달렸지만,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맴도는 일도 있었다.

차 안의 답답할 정도로 정체된 시간이 사고와 행동까지 둔하게 만들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홍이가 있는데, 예전처럼 팔짱을 낄 수도 손을 잡을 수도 당연히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과는 달리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밤은 화려한 불빛으로 눈부시고, 차가 속도를 낼 때면 깃옷처럼 가벼운 빛의 띠가 도로 좌우로 수없이 만들어졌다가는 사라졌다. 영하 10도의 찬 공기는 불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서울의 어둠 속 여기저기에 빛의 꽃을 피웠다. 홍이의 무표정한 얼굴 저쪽에 번뜩이는 빛줄기가 스칠 때마다 내 기억은 자극을 받고, 의식은 과거로 거슬러 갔다.

교차로에 하얀 옷의 홍이가 서 있다. 신호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빨간 신호로 바뀔 것이다. 마음이 급한 나는 이노가시라 도로로 뛰어들었고 반대차선에서 오던 차에 치일 뻔했다. 놀란 홍이가 내게로 달려 왔다. 괜찮아 하고 얼른 일어나 넉살을 떨자 홍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기뻐했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아파트가 있는 공원 쪽이 아닌 젊은이들로 붐비는 기치조지 북쪽 출구 쪽으로 향했다. 돈이 없었지만 우리는 가난하지 않았다. 호화스런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배를 곯지도 않았다. 젊음이란 이런 거야 하고 보여주듯 주위에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은 기치조지 거리를 활보하고 북적거리는 거리를 술래잡기라도 하듯 달렸으며, 서서 먹는 우동집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나눠먹었고, 밤늦은 시간에는 자동판매기 불빛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단 하나, 두 사람에게 부족했던 건 시간이었다. 나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두 군데 더 면접을 봐 두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홍이는 내가 공부는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을 이상해하는 것 같았다.

― 있잖아, 준고. 대학이란 공부를 하러 가는 데야. 그런데 넌 맨날 아르바이트만 하잖아.

평일 오전에는 잡지사에서 사무잡무를 보았고, 오후는 영화촬영장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하거나 차량통제를 조절했고 영어가정교사를 하기도 했다. 주말 저녁엔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했는데 홍이는 특히 내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일의 내용을 설명하자, 불순하다고 얼굴을 찌푸리며 내 셔츠에 여자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지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나는 웃었지만, 홍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첼리스트 아버지에게 사립대학의 학비는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게 학비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 인생이란 모든 게 공부야.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건 작가지망생인 나한테는 수업이라고. 부모 도움으로 편하게 학교를 다닌다면 소설 같은 거 못 쓸 거야. 그러니까 문학이란 건….

홍이는 내가 열심히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조이고 있던 입가와 미간을 풀었다.

그럼, 지금 뭘 쓰고 있는데? 하고 홍이는 트집을 잡는다.

― 아직 아무것도.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이었다.

― 언제 쓸 거야?

나는 먼 하늘을 응시하며,

― 이제 곧.

하고 말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교차로로 뛰어 들어 홍이는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우리는 몸이 앞으로 쏠리고 말았다. 인도로 무사히 달려간 사람은 젊은 날의 나였다.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오는 젊은 날의 홍이 모습도 있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목까지 올라온 시인의 말을 나는 마음속에 삼켰다. 이 시를 쓴 한국 시인의 존재를 가르쳐 준 것은 홍이였다. 처음엔 와 닿질 않았다. 시인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홍이 목소리에 어딘가 권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왠지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하지만 홍이가 내 앞에서 사라진 다음, 나는 이 시인의 작품을 탐독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별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행복을 잊기 쉬울 때, 나는 시인의 평이하나 무게 있는 말을 입속에서 반추하게 되었다.

차는 신라호텔을 지나 그대로 어둠 속으로 진로를 잡았다. 멀어져 가는 서울의 야경을 뒤로하고 차는 조용히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은하계를 빠져나오려는 우주선처럼. 밀폐된 차내에는 음악도 없이 조용한 엔진소리만이 진동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우주 그 자체의 신음소리. 바로 은하의 진동소리다.

“아직도 달리니?”

일억 광년 떨어진 별에 있는 사람에게 묻듯 나는 겨우 홍이에게 말을 건넨다. 바로 대답이 올 리가 없다. 일억 광년이란 시간의 거리를 여행하는 가냘픈 빛처럼 홍이 대답은 느리게 돌아 왔다.

홍이는 핸들을 꼭 쥔 채 응 하고 대답했다. 자칫 못 알아들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었다. 어둡고 조용해진 우주만이 두 사람의 앞길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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