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5 18:17
수정 : 2005.06.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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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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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에는 ‘PC방, 보드게임방, 노래방도 아닌 모텔방이 방방 뜨고 있다’는 소문이 3류 여관 골목길에까지 파다하다. “시간당 5000원, 공강 시간에도 부담 없이 즐기세요”라는 광고도 있다는데. 어른들은 ‘쯧쯧’ 혀끝을 차기도 하신다고. 궁금하긴 하다. 소문의 한 가운데 엮인 대학생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는지.
여기서 ‘즐기라니? 낯뜨겁잖아’라며 얼굴 붉힌 당신이라면? 얼굴보다 머릿속이 더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야릇한 상상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보자. 이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다 알면서’라는 식의 대답은 사절.
천정완(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4년)씨는 “3만원에 DVD도 보고 잠 자고 샤워도 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냐고들 한다”며 거듭 “나 말고 친구들이”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다. 시험기간에는 아침부터 모텔을 찾는 친구도 있다는데. 왜냐고? 자리도 없는 도서관을 피해 아주 열심히 시험 공부하려고.
경기대 황준희(경영학부 2년)씨는 “동아리 뒤풀이 땐 꼭 모텔에 간다”며 “사람이 많아 술을 사서 모텔방 잡는 게 훨씬 싸다”며 ‘모텔 경제론’을 꺼내든다. “단체로 자주 가는 편이라 모텔 출입이 어렵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말도 이어진다. 동아리 단골 모텔이 있을 정도다. 동아리 친구들과 깊은 새벽까지 있다 보면 옆방, 윗방 ‘소리’를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19살 아래 취재 불가다.
“돈도 시간도 부족할 때 여자친구와 서울 시내 테마 모텔을 간다”는 ㅎ대 이아무개(28)씨는 “도시락까지 싸서 가면 정말 여행가는 기분”이라며 웃음을 배시시. 여자친구를 위해 풍선으로 천장을 가득 메우거나 하트모양의 초를 침대 위에 꾸며 놓는 이벤트방 예약도 종종 한단다. 애인을 사랑하는 만큼 모텔을 사랑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두고 한예종 김아무개(연극원 4년)씨 못을 박는다. “모텔에 들어가는 남녀에게 섹스는 전제된 것이다. 요새 워낙 모텔 시설이 좋아져 섹스에 더해 다른 할 일이 많이 생긴 것일 뿐.” 같은 학교 이상민(미술원 1년)씨는 “눈치 안 보고 관계를 가질 수 있어 좋다”며 “스무 살 넘은 연인들의 ‘관계’란 게 특별한 건 아니잖는가”라고 되묻는다.
이에 세종대 이아무개(영문학 4년)씨는 “신촌처럼 대학 주변에 유흥가가 몰려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이진 않다”며 “대학생들이 연애하면 죄다 모텔에 간다고 본다면 틀린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 한참 뜸들인 뒤 “난 경험은 없지만 모텔에서 카드 결제는 안 한다더라”라고 한 마디 더 하는 센스.
자동차(Motor) 여행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Hotel)이라는 뜻의 모텔(Motel)이 한국에선 불륜의 연인을 남 몰래 데리고 갈 수 있는 ‘모올래’의 모텔이 되면서부터 그 위상이 흔들렸고 음습해졌다.
볕 좋은 곳은 죄다 차지하며 양지에서 음지를 지향하던 모텔이 요즘 대학생들의 당당하고 실리적인 생활양식으로 인해 진짜 양지로 나오고 있는 건 아닐까. 변하지 않는 건 누구도 함부로 들여다볼 자격은 없는 사적 공간이란 점. 상상하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가정집 방 한켠처럼 섹스를 하든, 밥을 먹든, 시험공부를 하든 이상할 리 없다.
‘야시시’한 의심 전에 개성이 넘치고 더욱더 자유로워지는 대학생들의 입맛을 좇아 가격 경쟁, 시설 경쟁을 벌이는 모텔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건 어떨까.
대학생들만의 새로운 공간으로 ‘방방’ 뜨는 모텔에 ‘대미안(大美安·대학생들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위한 공간)’이란 멋진 이름을 붙이는 센스는 없는가. 한 가지 더, 일상에 대해 음흉한 의심보다 발랄한 상상을 먼저 할 수 있는 우리 마음 속 모텔방을 하나씩 두는 센스도 잊지 말자.
이가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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