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5 20:10
수정 : 2005.06.15 20:10
꿈틀거리는 이 땅 산하의 기운
15일 중견 판화가 김억씨의 근작전을 시작한 서울 공평아트센터 1층 전시장 벽은 꿈틀거리는 이 땅 산하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전국 곳곳의 명산과 계곡, 사찰들을 돌아보고 사생한 결과물인 진경 목판화 40여 점을 내놓았다. 작품들은 파도처럼 물결치는 산줄기를 중심으로, 세심한 선으로 표현한 계곡 물줄기와 마을, 현대의 사람들 흔적까지를 한 눈에 다 담았다.
그의 작업은 소쇄원, 운주사, 선운사, 내소사, 동강 따위를 담은, 대개1m를 훌쩍 넘는 옛 두루마리나 족자 크기 그림들이다.
서구식 원근법이 아니라 위에서 일일이 여러 풍경을 훑으며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써서 표현한 산하풍경이다. 옛 지도처럼 풍경에 대한 여러 시점들을 한 자리에 모아낸 뒤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우리 산하의 장쾌함과 섬세함을 살린다. 98년 개인전 뒤 안성 작업실에서 칩거와 답사를 계속했던 그는 옛 성리학자들의 은거지를 그린 ‘구곡도’와 고지도의 골격을 따오되 훨씬 사실적인 산하 세부의 묘사로 그만의 산수 표현법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산구곡과 화양구곡, 옥화구곡, 동강, 운주사 등을 담은 목판화들이 그런 것들인데, 붓을 놀려 바위 암질을 표현하는 준법이나 수목이 들어찬 산세의 농담 등을 오로지 얇고 굵은 선으로 깎아내는 기법을 통해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청량산>과 <동강의 여정> 등의 대작에서는 암질을 표현한 잔선이 굽이치거나 죽죽 뻗어내리며 붓질과는 또다른 산하의 기운을 표출하기도 한다. 특히 누운 와불이며 천불천탑이 마치 남근이나 팔뚝처럼 들고 쳐올라서는 듯한 <일어서는 땅 운주사>는 창작의욕이 극대화한 득의작으로 비친다. 작가는 “칼로 새기는 목판의 과정은 산세에 대한 체험적 기억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21일까지. (02)733-9512.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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