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5 20:11
수정 : 2005.06.15 20:11
예술의 힘, 상상력!
생리대 샹들리에, 영화관 같은 비디오 아트, 플라스틱 바구니 장벽…. 10일 개막한 5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움직이는 힘은 역시 세상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삶, 이념 따위를 뭉뚱그려낸 상상력에 있었다. ‘예술의 체험’ ‘언제나 한 걸음 더 멀리’를 주제로 한 기획전과 국가관 전시 출품작들은 지나치게 정제되어 맥 빠졌다는 말도 나왔지만, 깊은 성찰력과 조형적 표현이 돋보이는 수작들이 적지 않았다.
바스콘셀로스 ‘탐폰’ 여성성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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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르디니 공원 들머리의 특별 프로젝트인 이탈리아 작가 파브리지오 프레시의 대형 폭포영상 설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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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들은 여성주의를 내세운 예술 공동 감독 로자 마르티네즈의 주제전 ‘언제나 한 걸음 더 멀리’에서 주로 보인다. 옛적 베네치아 생산력의 원천이었던 옛 조선소 아르세날레관의 들머리에서 프랑스 작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는 생리대 탐폰을 일일이 이어 환상적인 대형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여성성이 겉치레만 포장되어 이용당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로자가 극찬한 터키 작가 세미하 베르크소이는 비잔틴 성화의 이미지에 아이들 그림의 어리숙한 이미지를 조합해 섬뜩하고도 갸날픈 여성들의 이미지를 그렸고, 신인작가 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출신의 여성작가 레지나 호세 갈린도는 핏빛 도료를 발바닥에 찍고 다니며 3세계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는 퍼포먼스 영상으로 눈길을 모았다. 러시아 작가그룹 블루 노스는 종이 궤짝 안에 영상을 투사해 알몸 남녀가 섹스행위와 성욕을 화두로 얽키고 설키는 익살스런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
타피에스 인간내면 폭력성 고발
아르세날레관 중간에 위치한 ‘미국 미술관’은 60년대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미국 팝아트 작가 라우센버그의 전시관을 재현해 당시 미국 미술의 영향력을 조명하기도 했다.
다른 기획자 마리아 드코랄의 ‘예술의 체험’전은 실험성이 부족하다는 평이었으나 거장들의 회고전과 영화 스틸 영상을 방불케하는 영상작업 등이 많아 일반 관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주었다. 베이컨의 고깃덩어리 인간군상이나 곤충처럼 왜소화한 인간 단면을 담은 필립 거스톤, 내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타피에스 등의 걸작들이 줄줄이 나왔고, 설치작가 브루스 나우먼과 빛의 작가 제니 홀저 등도 작품을 냈다. 지난 11일 치러진 올해 출품작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가상을 받은 토마스 슈테의 여성 누드 조각과 드로잉, 75년생인 독일 작가 마티아스 바이셔의 지독하리만큼 꼼꼼한 실내 공간 인테리어 회화작업 등은 회화의 재성찰을 꾀하고 있는 세계 미술계의 보수적 경향을 언뜻 언뜻 드러냈다. 영화 <칼리귤라>의 외설적 장면들을 새롭게 각색한 프라네스코 베졸리나 할리우드 스타들의 극중 연기를 배경은 빼버린 채 모성적, 부성적 측면을 부각시킨 브라이츠의 스펙터클한 영상작업 등이 식상함을 메워주었다.
프랑스관 ‘국가관상’ 수상
자르디니 공원에서의 국가관 전시는 국가관상을 탄 프랑스관의 작가 아넷 메사제의 설치작업이 화제였다. 마치 폭포나 장강 같이 꾸물거리는 옷감천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채 시간과 실존의 상념을 읊조린, 거장 다운 작업이다. 영국관의 거장 길버트 & 조지의 대칭형 거대 이미지 작업과 루브르 미술관의 명화들 앞에서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며 예술의 시간성에 딴지를 놓은 스위스관의 영상작업, 어머니의 낡은 속옷과 소지품을 확대해 보여주며 모성의 내면을 탐구한 일본관 작가 미야코 이시우치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다. 한국관은 설치작가 최정화씨가 옥상에 플라스틱 바구니 수백여개를 장벽처럼 쌓은 <욕망장성>과 함진씨의 미세인간, 곤충 조형물 등이 눈길을 끌었다. 전망 좋은 방에 가까운 한국관 특유의 구조 때문인지 상당수 관객들은 최씨 작업을 원래 건물 일부로 착각하고 있었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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