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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8 15:17 수정 : 2005.06.18 15:17

5세기 초반 무렵에 조성된 강원 강릉지방 신라시대 대형 수혈식 석실묘에서 두 날개를 활짝 펼친 나비 모양인 호접형 금동 관모가 출토됐다.

나아가 이 무덤 석실 바닥에는 온통 조개껍데기를 깐 것으로 밝혀졌다.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삼국시대 매장 풍습은 사상 처음으로 확인됐다.

강원문화재연구소(단장 지현병)는 지난달 27일 이후 강릉시 초당동 84-2번지 주택신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라시대 수혈식 석곽묘 2기를 찾아냈다고 18일 말했다.

이 중 1호분에서는 피장자 머리쪽에서 금동제 호접형 관모 장식이 출토됐다.

이를 통해 이곳에 묻힌 주인공은 상당한 지위를 누린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지현병 단장은 덧붙였다.

강릉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초당동 C-1호에서 은으로 만든 새 날개 모양(조익형<鳥翼形> 관식(관 장식)이 출토된 적이 있으나 호접형 관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1993년에 발굴된 초당동 B-16호분에서는 出자형 금동관이 출토됐고, A-1호분에서는 금동제 대금구(허리띠) 등이 출토된 바 있어 이 초당동 고분군을 축조한주인공들은 신라시대에 이 일대를 지배한 유력한 계층이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런 관모가 출토된 1호분 석실 바닥에는 더욱 특이하게도 조개껍데기들을 두텁게 깐 것으로 드러났다.

1호분은 현재 봉분은 남아있지 않으나 축조 당시에는 지름 15-16m 정도 되는 대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주위로 주구(周溝. 도랑)를 마련했다.

봉분 중앙에 마련된 묘광(墓壙. 무덤방)은 장축 8m, 단축 2.5m, 깊이 1.3m이며,석곽(石槨. 돌로 쌓은 덧널)은 장축 6.4m, 단축 1.4m, 깊이 1.4m로 현재까지 강릉지역에서 조사된 신라시대 석곽묘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고분 축조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5세기 초반기에 해당한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석곽과는 별도로 부장품을 안치하기 위한 공간인 부장곽을 별도로 설치했다.

이 부장곽에서는 등자, 행엽, 교구를 비롯한 마구류와 철검, 유자이기(有刺利器.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도구) 등의 무기류가 출토됐다.

주곽에는 한쪽에 치우친 곳에서 토기류가 다량 매납돼 있었다.

목관을 안치한 후 그 목관과 석곽 사이의 공간은 물론 목관 상부와 부장 유물까지 자갈돌로 덮은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현병 단장이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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