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19 18:24 수정 : 2005.06.19 18:24

지난 16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남한쪽 가극 <금강>의 공연 장면. <오마이뉴스> 제공



금강 농민군 넋 대동강도 흐느꼈다

지난 16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6·15 통일대축전’ 마지막 행사로 남한쪽에서 준비한 가극 <금강>의 평양 공연이 열렸다. 가극 <금강>은 고 문익환 목사의 맏아들인 고 문호근 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이 지난 94년 신동엽의 장편시 ‘금강’을 바탕으로 동학혁명을 재구성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이날 공연은 김석만 연극원 교수 연출에 장민호, 서희승, 양희경, 강신일 등이 출연했다. 2천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지켜본 소설가 정도상씨가 관람기를 보내왔다.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정씨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비디오라도 꼭 보겠다고 해서 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국이 공연 전 과정을 녹화해갈 정도로 관심과 열기가 높았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편집자

무대·음향·배우 모두 열악했다
그러나 우금치 산마루 통곡에
평양도 마침내 흐느꼈다
모두 일어섰다 기립박수였다

막이 올랐다. 캄캄한 무대 위에서 실루엣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 그리고 마침내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합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한 줄기의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비로소 몸을 드러내는 배우들,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합창으로 부르며 이어지는 격렬한 춤사위…. 무명의 시인이 등장해 금강의 언덕과 갈대와 그 갈대 하나하나에 서린 동학농민군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어서 그랬을까.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객석에서 헛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심지어는 고개를 떨구고 자는 사람도 보였다.

진아와 명학 역을 맡은 남녀 주연배우는 괜찮을까? 공연 날 아침에 쓰러져서 링거를 맞아야 했던 두 사람이 과연 이 공연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까, 모두들 걱정이었다. 오후 7시 공연인데 처음이자 마지막 리허설을 오후 5시30분에 간신히 마친 터라 스태프들은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배우 전체가 무대에 서서 조명과 음향과 동선을 맞춘 게 고작 하루였다. 과연 극이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였다. 무대와 음향이 평양에 도착한 것은 6월11일이었다. 봉화예술극장의 관계자와 스태프들은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일을 했다. 그야말로 몸과 몸이 교류하는 진정한 문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조명은 14일에 직항기 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배우들 중 조명 아래에 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출과 무대감독과 조명감독 모두 이런 공연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남쪽의 가극을 평양에서 공연하는 과정은 이렇듯 참으로 험난했다. 게다가 바로 전날에는 북쪽의 가극 <춘향전>을 보고 잔뜩 주눅이 든 상태였다. <춘향전>의 배우들은 7년 동안 하나의 작품에만 매달려온 사람들이었고, <금강>의 배우들은 겨우 한달 정도만 연습을 했으니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했다.


노비추쇄꾼에게 쫓기는 하늬와 궁에서 나와 떠도는 진아, 그리고 동학군의 장군인 명학이가 서로 갈등하며 극을 이끌어나가자 관객들의 기침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하여 집강소를 설치하고 최후의 우금치 전투를 준비할 즈음에 이르자 관객들은 극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춘향전>의 배우들은 방창단을 합쳐 거의 150여명에 이르렀지만 <금강>의 배우는 고작 서른명에 불과했다. 그들이 엮어내는 열정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그리고 우금치 전투….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랬다. 객석은 조용히 눈물의 금강에 빠지고 있었다.

‘새가 운다, 새들이 운다, 눈물 없는 새들이 운다.’ 고창댁으로 분한 양희경씨를 비롯한 네 명의 여인들이 흰옷을 입고 깊은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우금치 언덕에서 쓰러져간 동학농민군의 넋을 수습하는 장면에 이르자 객석은 침묵의 울음바다에 흠뻑 젖어들었다. 대규모의 혁명가극은 아니었지만, 내면을 찌르는 무대와 배우들의 열정 앞에 남과 북, 해외의 관객들은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막이 내렸다. 배우들의 눈에서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연출자 김석만 교수는 “그쪽 공식일정을 소화하면서 공연을 준비하느라 실력을 70~80%밖에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그럼에도 남북한 모두가 <금강>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아직 동질성을 잃지 않은 것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남북간 문화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문제보다는 무엇이 동질한가를 찾는 데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상/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