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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1 16:13 수정 : 2005.06.21 16:13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고분군 중 제7호분에서 출토된 소위 '구유형' 목관은 배를 본뜬 이른바 '주형 목관'(舟形木棺)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지난해 조사에서 '구유형'이라고 보고한 이 녹나무 목관을 보존처리하기 위해 21일 무덤방에서 이를 외부로 반출함으로써 제기되기 시작했다.

조사단이 6세기 전반기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 고분에서 약 1천500년 만에 바깥으로 나온 이 목관은, 통나무를 마치 얕은 홈통처럼 파낸 널빤지 모양이었으며, 한쪽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가 하면 그 좁아진 끝은 마치 선수처럼 뒷부분에 비해 약간 위로 들춰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목관에서 더욱 특이한 점은 이런 '배 모양' 널판을 목관 바닥으로 이용했음이 확실함에도 그 한쪽 면의 일부만 드러나고, 나머지 맞은 편 측면이나 덮개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창원문화재연구소 박종익 학예실장은 "여타 (삼국시대) 목관에서 보이는 것과같은 덮개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목관은 또 양쪽 측면 중 한쪽 면 변두리를 따라 일정 간격으로 나무못과 같은것을 박기 위한 흔적으로 생각되는 직사각형 모양 구멍이 일정 간격마다 뚫려 있었고, 그 한쪽 끝에는 무엇인가 다른 부품을 댄 흔적임이 분명한 큰 아귀 구멍이 나타났다.

이처럼 배를 본뜬 것과 같은 목관은 중국에서는 남방지방 초나라 문화권에서 매우 발달해 있었고 일본열도에서도 비교적 자주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번 송현동 7호분 목관은 비상한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이 목관을 만드는 데 사용된 것으로 드러난 녹나무 또한 한반도에서는 제주도와남해안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자생하지 않는 대신 중국 남부지방과 일본열도에서집중적으로 자생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지병목 창원문화재연구소장은 "이 무덤은 출토 유물이나 축조 방법 등으로 보아신라색이 완연하다는 점에서 창녕 지역이 이미 6세기 초반이면 완전히 신라 복속 하에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며, 학자에 따라서는 그보다 100년, 혹은 150년 이전에이미 이곳은 신라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의하면 송현동 7호분은 사실상 신라고분인 셈이다.

이 송현동 고분과 비슷하거나 약간 앞선 시기 경주 평야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4-6세기 신라의 전형적적인 중앙지역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분에서 중국 남방지역의문화적 특성이 짙게 보이고, 일부 유물에서는 왜색이 감지되고 있는 점은 녹나무 목재와 그것을 이용한 배 모양 목관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이 송현동 7호분 또한 이미 지난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인근 6호분과 같이무덤방 벽면 일부에서 주칠이 확인됐으며, 또한 총 50점 가량 되는 화살대가 달린 쇠화살촉 한 묶음이 발굴됐다.

(창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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